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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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과 금수면 가야산 일대에서 곡우를 전후하여 자작나무의 수액을 마시는 풍습. 가야산(伽倻山) 곡우물 마시기는 가야산[주봉 칠불봉 1,432m, 지형도 기준] 중턱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용사리와 금수면 무학리 일대에 자생하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먹는 풍습으로 곡우(穀雨)[24절기 중 여섯 번째이며, 청명과 입하 사이]를 전후하여 마신다고 하여 곡우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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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 이씨 종가에서 내려 오는 감자로 만든 송편. 감자송편은 쌀로 만든 송편보다 쫄깃거리는 맛이 별미스러운 송편이다. 감자 수확기에 상처난 감자를 삭혀 녹말을 만들어 빚은 송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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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지촌의 선비 집안 여성인 정갑이가 필사한 고소설. 「강릉추월전(江陵秋月傳)」은 이춘백 가족의 만남과 헤어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마지막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산다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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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년에 편찬한 『경상도지리지』에 수록된 상주도 성주목 지리지. 1425년(세종 7) 하연(河演)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금유(琴柔)와 인동현감 김빈(金鑌)과 함께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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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 지역은 신라 시대 본피현(本彼縣)이었다가 경덕왕(景德王)이 신안(新安)으로 고쳐 성산군(星山郡)에 붙였다가 뒤에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쳤다. 신라는 889년(진성 여왕 3)부터 실정(失政)으로 인하여 전국이 일시에 분열되었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이총언(李悤言)이 이 지역을 잘 지키고 다스렸기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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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정원호가 발행한 경상도 도지. 정원호(鄭源鎬)는 청주 정씨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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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성주 출신 의병장. 1908년 5월~9월에 경상북도 성주, 경상남도 합천, 거창 등 여러 지역에서 의병 8~9명을 지휘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항일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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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 지역에서는 개항기 반봉건 농민 항쟁으로 1862년(철종 13) 임술년(壬戌年) 농민 항쟁, 1883년(고종 20) 계미년(癸未年) 농민 항쟁,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등이 일어났고, 외세의 침략에 대한 반제국주의 운동, 곧 위정척사 운동으로 전개된 1866년(고종 3) 병인 양요에 대응하는 의병 활동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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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지촌의 선비 집안 여성인 정갑이와 딸 정명호가 필사한 고소설. 「길동록(吉童錄)」은 전반부 매면 12행, 매행 20~28자 내외 37장, 후반부 매면 10행, 매행 18~22자 내외 2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교 사회에서 신분의 제약을 가진 뛰어난 인물인 홍길동(洪吉童)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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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심원사에 있는 고려 후기 역서 목판. 길흉축월횡간 고려 목판(吉凶逐月橫看高麗木板)은 심원사(深源寺)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 시대의 인쇄 문화재로,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 시대 역서 목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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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경부(敬夫), 호는 개암(開巖).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낸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이며, 어머니는 곽인화(郭人和)의 딸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형은 이계(伊溪) 김우홍(金宇弘)[1522~1590]이고 동생은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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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독용산에 있는 가야 시대 산성. 독용산성(禿用山城)은 현존하는 수많은 영남 지역의 성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산성으로서 가야 시대에 축조하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건립 경위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성주 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위치로 미루어 볼 때 국경을 방어하는 군사적 목적으로 건립하였으리라 추정한다. 이러한 건립 목적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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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 「모심는 소리」는 「이앙가(移秧歌)」라고도 한다. 예전에 벌모 형식의 농사짓는 방법이 수확이 적었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부터는 어린 모를 미리 키워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부르는 소리이다. 모를 찔 때 부르는 소리를 「모찌는 소리」라고 하며,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소리를 「모심는 소리」라고 한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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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해 온 활동과 작품. 성주 지역의 문학은 성주에서 출생한 작가 또는 일정 기간 성주에 머물거나 활동 근거를 둔 작가가 생각과 느낌을 언어로 생산한 작품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성산가야(星山伽倻)의 고도(古都) 성주는 예로부터 ‘인물과 문헌의 고장’이라 할 만큼 인재가 넘쳤고,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신라 말에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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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의병. 임진왜란 때 김산(金山)[현 경상북도 김천시] 여남현(汝南峴)으로 형 배설(裵楔)[1551~1599]을 만나러 가다가 왜적을 만나 싸웠지만,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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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보리타작을 할 때 부르는 소리.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2동 앵무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에서 배상철[남, 63]이 구연한 것을 1979년 4월 17일 강은해가 조사, 채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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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실 마을이 옛 두릉방의 중심 지역이어서 ‘본리(本里)’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리1리의 자연 마을로 괴평리(槐坪里)[귀평리]가 있고, 본리2리의 자연 마을로 두리실[두리곡(杜里谷)·본리·두릉(杜陵)·두의곡(豆衣谷)]과 갓골[관동리(冠東里)]이 있으며, 본리3리의 자연 마을로 보뜸[원리(院里)]과 회목[괴항(槐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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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호 하는 종교. 성주군은 경상북도 서부에 있고, 남쪽으로는 해인사(海印寺)가 있는 경상남도 합천군과 고령군에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칠곡군과 대구광역시, 서쪽으로는 직지사(直指寺)가 있는 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성주의 지세는 서고동저의 산세에 두 줄기의 큰 하천인 대가천(大伽川)과 이천(利川)이 관류해 낙동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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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선송리 선송사에 소장되어 있는 1806년에 제작된 불화. 성주 선송사 신중도(星州仙松寺神衆圖)는 1806년(순조 6) 세연(世衍)이 그린 불화이다. 신중도(神衆圖)는 부처님의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천신들의 무리를 그린 불화이다. 불화이지만 부처나 보살을 그리지 않고 불교를 수호하는 여러 수호신인 신중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은 인도의 토속신과 중국의 시왕,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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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에 있는 16기의 비. 성주 역사 테마 공원 내 비석군은 원래 성주 읍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기공비(紀功碑), 선정비(善政碑) 등 16기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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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 있던 오일장. 성주는 비교적 경상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기에도 용이한 편이라 교통이 편리하여 상업이 발전하는 데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1905년(고종 42)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가 운송을 담당하기 전까지 교통과 화물 수송에서 낙동강의 역할은 매우 컸다. 낙동강에 이어진 포구들은 인접한 내륙으로 물화를 공급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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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년부터 1895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부터 주로 경산부(京山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성주’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성주목은 행정 구역과 이름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지만, 1895년(고종 32) 칙령 제101호로 8도제를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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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주목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개국 당시 성주는 경상도에서 가장 넓은 간전 결수(墾田結數)[간전은 개간하여 만든 밭]를 보유하였고, 많은 제언(堤堰)이 축조되어 있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으며, 인재도 많이 배출한 영남의 거읍 중 하나로 상주, 진주와 함께 경상우도의 중심된 큰 고을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계속 경산부(京山府)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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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으로 읍치의 상징인 성주읍성을 재현한 공간. 성주 역사 테마 공원은 과거에 성주읍성(星州邑城)이 있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번지[성주읍5길 37-1] 일원에 성주읍성을 재현하고 주변 공간을 정비하여 도심 공원으로 만든 공간이다. 성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성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성주읍성은 고을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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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읍성 밖에 조성된 왕버들 숲.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번지 일대에 있으며, 조선 중기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성주읍성(星州邑城) 서문 밖에 조성한 전통 비보림(裨補林)이다. 비보림은 풍수지리적으로 지세(地勢)가 약하거나 주변 환경에 결점이 있으면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을 말한다. 조성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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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세종실록』 부록에 실린 성주목의 지리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는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1432년(세종 14)에 편찬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에 4군 6진 등 일부 고을을 추가한 것이다. 성주목 수록 내용은 1425년에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상주도 성주목관(尙州道星州牧官)」의 수록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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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 도세순(都世純)[1574~1653]의 『용사일기(龍蛇日記)』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이다. 임진왜란 피란 과정을 기록한 여러 편의 용사일기 중 도세순의 『용사일기: 용사난중일기』는 일반인 특히 18세 소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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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 편찬 당시 성주목에서 편찬한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 편찬 사업 당시 홍문관은 각 고을에 35개 항목을 수록하도록 규정을 내려 보냈으나, 경상도에서는 5개 항목을 추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모든 항목을 반영하였다. 당시 경상도 각 고을에서는 중앙에 올려 보낼 3권[어람·홍문관·성균관], 감영에 비치할 2권을 만들어 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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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성주를 비롯한 영남 지역의 유생들이 개화 정책에 반대하여 올린 집단적 상소. 영남 만인소(嶺南萬人疏)는 1881년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 및 미국과의 조약 체결에 반대하며 올린 이만손(李晩孫)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 유생들의 상소이다. 개화에 반대하는 위정척사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성주 지역의 유생들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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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도』 내에 수록된 18세기 성주목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제4책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이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므로 이 지도책은 1767년 이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 5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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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성주 지역에서 전개된 위정척사 사상과 그 운동. 위정척사 운동(衛正斥邪運動)은 개항기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한 운동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열강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대원군 정권과 그 지지 세력인 양반 유생들은 위정척사 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위정(衛正)은 주자학적 질서인 정(正)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척사(斥邪)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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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여 경상도 도지에 수록한 성주목 읍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읍지(邑誌)』 경상도편(제37~50책)은 경상도의 71개 고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878년(고종 15)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완질을 갖추기 위하여,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면서 환적 등에 지방관을 추기한 것이다. 원래는 열고관에 있던 『읍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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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지역에 거주한 학자이자 의병.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수학하였고,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등과 교유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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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용담 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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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숙발(叔發), 호는 백천(白川). 이흥문(李興文)의 후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이안(李晏), 증조할아버지는 이수장(李秀場), 할아버지는 이팽조(李彭祖)이다. 아버지는 암서(巖棲) 이침(李忱)[1543~1580]이다. 형은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1558~160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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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성주 지역의 호족이자 벽진 이씨의 시조. 벽진 이씨(碧珍李氏)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성산 이씨(星山李氏), 광평 이씨(廣平李氏), 경산 이씨(京山李氏), 가리 이씨(加利李氏)와 함께 성주 6리(李)로 불리는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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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성주 지역민이 조직한 민병.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적이 빠르게 북상하자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장 배덕문(裵德文)을 위시한 약 49명의 의병으로서, 성주성과 인근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끈질긴 투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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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문거(文擧), 호는 개옹(㝏翁). 할아버지는 장잠(張潛), 아버지는 호조 참의에 증직된 장곤(張崑)이다. 부인은 창원 유씨(昌原兪氏) 유수지(兪遂之)의 딸이며, 아들은 장이유(張以兪)이다. 장홍한(張鴻翰)은 동생이고, 장사진(張士珍)은 사촌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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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 정치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문제와 관련되는 현상으로 사회 현상의 일부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며, 조금 구체화하면 권력·공직, 부·예산,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희소 자원·가치의 공적 배분 문제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치는 사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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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의 산업 중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들어 내는 업종. 한국 산업 표준 분류에 의하면 제조업은 원재료에 물리적 및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성질이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인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 분류된다. 조선 시대 성주군의 제조업은 농민이 자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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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는 고려 시대인 1308년(충선왕 즉위년)부터 1310년까지 잠시 성주목(星州牧)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성주목이라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인 1401년(태종 1) 이후이다. 조선 시대 거의 대부분 성주는 성주목으로 불렸다. 1895년(고종 32) 칙령 제101호로 8도제를 폐지하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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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한 전국 군현 지도첩인 『조선지도』 중 성주 지역 지도. 『조선지도』는 전라도를 제외한 7개 도의 군현 지도를 모은 것으로, 모두 7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첩에 함경도[23장], 제2첩에 평안도[42장], 제3첩에 강원도[27장], 제4첩에 황해도[23장], 제5첩에 경기도[33장], 제6첩에 충청도[54장], 제7첩에 경상도[71장]의 군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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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지신밟기 제의 과정에서 부르는 액막이 제의요. 「지신밟기」는 경상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액막이 제의요이다. 경상도 「지신밟기」는 메나리조[주요 음계가 미솔라도래]로 구성되며, 선소리꾼이 메기면 사물이 받는 형식으로 불려진다. 사설은 성주 조왕신, 장독대, 뒤주, 뒷간, 마구간, 터주 등 집 안 곳곳을 돌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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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지촌의 선비 집안 여성인 정갑이가 필사한 고소설. 유교적 입신양면(立身揚名)을 지향하는 주인공 이만춘과 네 명의 여성이 혼사 장애와 갈등을 극복하고 혼례를 치르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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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일어난 농민 항쟁. 1862년 농민 항쟁은 1862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읍폐 해결과 개혁을 요구하며 일어난 성주 지역의 농민 항쟁이다. 1862년 3월 26일 몰락 양반 이발(李浡)과 이참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 성주의 폐막(弊瘼) 해결을 요구한 12개 조의 요구 사항을 감영에 올리고, 탐학한 이서의 집 5호 및 서리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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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유천(幼天), 호는 노수(鷺睡)·해암(海庵).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1560~1638]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무첨재(無忝齋) 최기중(崔器重)[1730~?]이며, 할아버지는 최지해(崔之海)이다. 아버지는 최성한(崔聲翰)이고, 어머니는 감찰(監察) 손회경(孫會慶)[1748~?]의 딸 경주 손씨(慶州孫氏)이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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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성주 출신의 의병. 최은동(崔殷東)[1866~1936]은 1866년 4월 2일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1154번지에서 태어났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발생한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乙未事變)과 12월 30일[음력 11월 15일] 단행된 단발령(斷髮令)에 반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가장 먼저 일어난 의병이 문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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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조선 시대 성리학자 한강 정구와 그 제자들이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조선 선조 대 성리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로, 이후 퇴계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한강 정구가 제자를 기르기 위해 건립한 회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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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한 『해동지도』에 수록된 성주목 지도. 『해동지도』는 총 8책으로 규격은 세로 47.0㎝, 가로 30.5㎝이다.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뿐만 아니라 천하도, 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1748년(영조 24)부터 1750년까지 상황이 적혀 있고, 1750년부터 시행되는 균역법(均役法)에 관한 내용이 반영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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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5년부터 1308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행정 구역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인 1295년(충렬왕 21)에 경산부(京山府)에서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도호부(都護府)는 원래 중국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에서 변경 경비와 주변 민족 통치 등을 위해 설치했던 군사 기관이다. 흥안도호부는 고려가 이런 제도를 차용한 것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