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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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법정면. 성주군과 관련한 각종 읍지[『경산지(京山志)』,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 『읍지잡기(邑誌雜記)』, 『성산지(星山誌)』]에 따르면 가천 지역은 원래 이물(爾勿) 또는 이물역으로 불렀으나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이름이 누추하고 괴이하다면서 ‘가천(伽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가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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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서 박언성을 시조, 고령을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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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대가면, 성주읍, 월항면을 거쳐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과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을 연결하는 일반 국도. 국도 제33호선은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시작하여 진주시·산청군·합천군과, 경상북도 고령군·성주군·칠곡군을 거쳐 구미시까지 이르는 일반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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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와 용암면 중거리를 잇는 고개. 굴티 고개는 동쪽의 대성산[424.7m]과 북동쪽의 해발 고도 350m의 산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고도 210m 정도의 낮은 안부(鞍部)[2개의 산꼭대기 사이에 끼인 산등성이 선상의 낮은 부분]이다. 굴티 고개를 이루는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화강암질 편마암이며, 산지의 토양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어 암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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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선원(善源), 호는 지지당(止止堂). 할아버지는 김문상(金文尙)이고, 아버지는 김준례(金遵禮)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 안순(安純)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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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현 남은리 지역은 남은동(南隱洞)이 되었는데, 당시 자연 마을 이름 중 하나인 여동의 한자가 ‘남을 여(餘)’ 자여서 우리말로 ‘남은’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남은1리의 자연 마을로 법산(法山), 남창(南倉), 강정(江亭)이 있고, 남은2리의 자연 마을로 가작내[가작천(加作川)·작천(柞川·鵲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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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모를 심은 후 김을 매는 과정에서 부르는 농업 노동요. 「논매기 소리」는 모를 심은 후 김을 매는 과정에서 부르는 농요로, 처음 김을 맬 때 부르는 아시 논매기 소리와 두 번째인 두벌 논매기 노래, 세 번째인 세벌 논매기 노래로 구분되는 민요이다. 6월,7월 한참 뜨거운 여름 날씨에 김매는 노동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등에 짚으로 만든 가리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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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있는 법정리. ‘덕평(德坪)’이란 이름은 지역 내 네 개 자연 마을 중 큰 마을인 원덕평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평야 가운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덕평이라 불렀다고 한다. 덕평리의 자연 마을로 원덕평(元德坪), 사부골[사부곡(沙阜谷)], 오백리[오봉리(五峯里)], 윗골[위동(渭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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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해 온 활동과 작품. 성주 지역의 문학은 성주에서 출생한 작가 또는 일정 기간 성주에 머물거나 활동 근거를 둔 작가가 생각과 느낌을 언어로 생산한 작품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성산가야(星山伽倻)의 고도(古都) 성주는 예로부터 ‘인물과 문헌의 고장’이라 할 만큼 인재가 넘쳤고,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신라 말에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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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주 출신의 의병장. 임진왜란 때 늦은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성주성을 구하고 백성의 희생을 막은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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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성주 지역 한주학파 유생들을 중심으로 전개한 국권 회복 운동. 배일 언론 투쟁은 성주의 한주학파 유생들이 무력 항쟁을 통한 국권 회복보다는 만국 공법에 호소하는 외교를 통한 국권 회복이 더 적실하다는 입장에서 전개한 구국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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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통중(通衆), 호는 명암(明庵). 흥안군(興安君) 배인경(裵仁慶)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문과 급제 후 사재감 정(司宰監正)과 한성서윤(漢城庶尹)을 지내고 고종(高宗) 때 이조 판서와 홍문관 대제학에 증직된 서암(書巖) 배덕문(裵德文)이고, 어머니는 선산 백씨(善山白氏)이다.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배설(裵楔)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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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언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인 이총언(李悤言)이 신라 말 벽진군[현 경상북도 성주군의 옛 이름]의 태수였을 때 고려 태조를 도와 큰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 벽진장군(碧珍將軍)에 봉해지면서 벽진을 관향으로 하는 벽진 이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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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운곡면(雲谷面)과 명암면(明岩面)을 통합하여 벽진면(碧珍面)이라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명암면은 관아에서 15리, 운곡면은 관아에서 20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운곡면의 한자 표기가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운곡방(云谷坊),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운곡면(云谷面)으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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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와 선남면 장학리를 잇는 고개. 별이 떨어진 고개라 하여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한자로 표기하면 성현[星峴]이라고도 한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성현(星峴)이라 표기되어 있다. 별티재의 동쪽에 있는 성산(星山)도 별과 관련된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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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성주 출신 문신인 정구가 신병 치료를 위해 동래 온천욕을 다녀오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산문. 원래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의 『석담집(石潭集)』에 실려 있었는데, 노상직(盧相稷)[1855~1931]의 집에서 이본이 발견되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13세손인 정재기(鄭在夔)[1857~1919]가 “두 본을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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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주민이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과정.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운용과 관련해서 필수적인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들이 주인인 만큼 국민 모두가 직접 참여해서 사회의 운영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그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므로 대표자를 뽑아서 그 대표자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간접 민주주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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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성주 시외버스 터미널은 성주 군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개장한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시외버스와 농어촌 버스 정류장으로 서울 남부와 동서울, 대구, 경상북도 고령, 김천, 칠곡행 버스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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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의 고분군. 성주군 성주읍의 안산(案山)격인 해발 389.2m의 성산(星山) 정상부에는 성산성이 있고, 이 산성을 둘러싸고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에 고분들이 분포하여 고분군을 이루고 있다. 고분군은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성주읍 성산리와 선남면 명포리·장학리·신부리에 걸쳐 있어 성주 성산동 고분군(星州星山洞古墳群), 명포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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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 있던 오일장. 성주는 비교적 경상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기에도 용이한 편이라 교통이 편리하여 상업이 발전하는 데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1905년(고종 42)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가 운송을 담당하기 전까지 교통과 화물 수송에서 낙동강의 역할은 매우 컸다. 낙동강에 이어진 포구들은 인접한 내륙으로 물화를 공급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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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으로 읍치의 상징인 성주읍성을 재현한 공간. 성주 역사 테마 공원은 과거에 성주읍성(星州邑城)이 있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번지[성주읍5길 37-1] 일원에 성주읍성을 재현하고 주변 공간을 정비하여 도심 공원으로 만든 공간이다. 성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성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성주읍성은 고을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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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법정읍. ‘성주(星州)’라는 이름은 고도(古都)인 성산가야(星山伽倻)의 ‘성(星)’ 자에 ‘고을 주(州)’ 자를 부여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 성주읍의 안산(案山)을 ‘별’을 상징한 성산(星山)[별뫼]이라고 한 것이 성주 읍기의 와우형(臥牛形)을 취한 것이라고 보면, 성산에서 성산가야, 이후 성주로 이름이 전이되어 오늘날 ‘별고을 성주(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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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지역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씨. 삼국 시대 때 성씨는 왕족과 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었다. 후삼국 시기를 거치면서 호족이나 고려의 개국 공신들이 성씨를 사용했고, 시조(始祖)의 출신지나 거주지를 본관(本貫)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시대를 지나면서 성씨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이 차츰 사라졌고, 조선 시대에는 일반 백성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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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우복실 마을 언덕에 있는 열녀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순천 박씨 표열비」는 성주군 벽진면 운정2리 우복실 마을 여씨 집안으로 시집온 부인이 자신의 살을 베어 끓인 물을 병든 남편에게 먹여 낫게 하였지만, 결국 남편이 다시 병들어 죽게 되자 부인도 스스로 자결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열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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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 도세순(都世純)[1574~1653]의 『용사일기(龍蛇日記)』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의 18세 소년 도세순이 임진왜란의 피란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이다. 임진왜란 피란 과정을 기록한 여러 편의 용사일기 중 도세순의 『용사일기: 용사난중일기』는 일반인 특히 18세 소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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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 지역 청동기 시대는 고인돌군의 형태로 미루어 여섯 개의 생활권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세기 고조선 혹은 낙랑 지역 유이민 파동에 따라 한(漢)의 발달된 철기 문화가 급속히 전파되었고, 철제 무기 및 농기구 제작 기술의 발달로 정치체들 간 정복과 통합이 활발히 일어났다. 철기 문화와 함께 무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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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이승희 등 성주 지역 유림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며 벌인 투쟁. 을사늑약 반대 투쟁은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1847~1916],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 등의 한주학파 유생들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복합 상소를 올리며 벌인 투쟁이다. 일본 군경의 방해로 실패했고, 이승희는 대구경무소에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상소와 통문의 정당성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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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 지역에 거주한 학자이자 의병.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수학하였고,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등과 교유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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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상가(尙加), 시호는 경원(敬元)이고, 작호는 성산군(星山君). 이포는 시조 이순유(李純由)의 14세손이다. 원래 조상들이 대대로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부리(府吏) 즉 향리를 지냈다. 이순유의 13세손 이조년(李兆年)이 과거에 합격하고 중앙에 진출하여 집안의 격이 높아졌다. 이조년의 외아들이 이포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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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이진상이 성리학의 핵심을 여러 경전에서 발췌하여 편찬한 성리서. 『이학종요(理學綜要)』는 성주 출신 학자인 이진상이 성리학의 주요 이론을 여러 경전에서 인용하여 설명한 뒤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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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성주군 관할 지역이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일리군(一利郡)은 신라 때 성주의 관할 지역으로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과 다산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 구역 명칭이다. 이산군(里山郡)으로도 불리었다고 하며 우륵(于勒)의 출신지인 성열현(省熱縣)을 치소로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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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법정리. ‘작은(鵲隱)’이란 지명은 마을 동쪽에 있는 까치산[작산(鵲山)]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작은리의 자연 마을로 거뫼[거산(巨山)]와 산거리(山巨里), 덕골[덕곡(德谷)], 모방골[방동(方洞)], 개티[개고개·개현(介峴)], 배티[배고개]가 있다. 동쪽 성주군 용암면과 경계인 산마루를 개고개[개현(介峴)]라 하였는데 개티는 여기에서 나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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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장학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장학리 별티 고분군은 성주군 선남면 장학리 산36-1번지, 성주읍과 선남면의 경계인 별티재[星峴] 남쪽에 있다. 별티재를 지나 군도 제14호선을 기준으로 동쪽 산지의 정선부와 사면 일원에 위치한다. 성주 성산동 고분군(星州星山洞古墳群)에서 남쪽으로 약 1.2㎞ 정도 떨어져 있다. 고분군의 북쪽에 있는 별티재는 옛부터 고령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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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속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신라 때 사공(司功)의 벼슬을 지낸 전주 호족 이한(李翰)이 시조이다. 이한은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로 신라 무열왕의 10세손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혼인하여 시중(侍中) 이자연(李自延)을 낳았다. 이어 이자연이 복야(僕射) 이천상(李天祥)을 낳으면서 이자연-이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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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 정치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문제와 관련되는 현상으로 사회 현상의 일부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며, 조금 구체화하면 권력·공직, 부·예산,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희소 자원·가치의 공적 배분 문제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치는 사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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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는 고려 시대인 1308년(충선왕 즉위년)부터 1310년까지 잠시 성주목(星州牧)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성주목이라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인 1401년(태종 1) 이후이다. 조선 시대 거의 대부분 성주는 성주목으로 불렸다. 1895년(고종 32) 칙령 제101호로 8도제를 폐지하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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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과 수륜면,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걸쳐 있는 명산. 가야산은 성주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성주군 가천면과 수륜면,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걸쳐 있고, 거창군 가북면과도 접하고 있다. 60% 넘는 산지가 성주에 속해 있는 가야산의 지질은 화강 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산의 최고봉은 성주군에 있는 칠불봉(七佛峯)[1,433m]으로 상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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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한 전국 군현 지도첩인 『조선지도』 중 성주 지역 지도. 『조선지도』는 전라도를 제외한 7개 도의 군현 지도를 모은 것으로, 모두 7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첩에 함경도[23장], 제2첩에 평안도[42장], 제3첩에 강원도[27장], 제4첩에 황해도[23장], 제5첩에 경기도[33장], 제6첩에 충청도[54장], 제7첩에 경상도[71장]의 군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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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성주 지역의 대표 문인 김맹성의 시문집. 김맹성(金孟性)[1437~1487]의 호는 지지당(止止堂), 자는 선원(善源),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성주 가천(伽川)에서 태어났다. 1452년(문종 2) 16세 때 6세 연상의 김종직(金宗直)을 따라 개령 감문산(甘文山)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그 뒤 다시 김종직을 따라 김천 직지사에 가서 공부하였으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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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성인보를 시조,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 창녕 성씨의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중기 중윤호장(中尹戶長)을 지낸 인물이다. 그의 아들 성송국(成松國)은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으며 자손들이 계속 창녕에 세거하여 창녕(昌寧)을 관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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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성주목 독용산성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회화식 채색 지도로 총 459매이다. 크기는 가로 70~90㎝, 세로 1.0~1.2m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성주 지역에 해당하는 지도로는 독용산성 지도에 해당하는 독용도만 포함되어 있고, 성주목의 전체 지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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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발(士發), 호는 매와(梅窩) 혹은 치광자(癡狂子).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최사철(崔師哲)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 최정(崔淨)[1528~?]이다. 아버지는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1560~1638]이고, 어머니는 참봉(參奉) 류경준(柳景濬)의 딸 풍산 류씨(豐山柳氏)이다. 부인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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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행(士行), 호는 관봉(鸛峰) 또는 나광자(懶狂子).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최사철(崔師哲),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 최정(崔淨)[1528~?]이다. 아버지는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1560~1638]이고, 어머니는 참봉(參奉) 류경준(柳景濬)의 딸 풍산 류씨(豐山柳氏)이다. 부인은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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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최정수 가옥은 성주군 수륜면 남은길 116-1[남은리 811번지], 집성촌 마을 안쪽 고지대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법산 마을은 국도 제33호선 성주~고령 경계에서 서북면의 대가천 건너편에, 위로는 감토봉(甘吐峰)을 등지고 전방으로는 밤마늘들과 앞정지들, 주막댁이를 굽어보며 남향하고 있다. 국도 제33호선에서 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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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법산 마을 영천 최씨 입향조이자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덕구(德久), 호는 죽헌(竹軒).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최유(崔裕)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최사철(崔師哲)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최정(崔淨)[1528~?]이고, 어머니는 연창군(延昌君) 이학수(李鶴壽)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풍산 류씨(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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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덕평리와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를 잇는 고개. 칠령재는 북서쪽의 추산(楸山)[524.1m]과 연결되는 능선에 있는 해발 고도 260m의 산봉우리와 남동쪽의 해발 고도 241m의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170m의 낮은 지점이다. 칠령재의 북쪽 사면은 신천으로 유입되는 지류의 발원지이며, 최상류부에 칠령 소류지가 있다. 칠령재의 남쪽 사면은 회천의 작은 지류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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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출신의 조선 시대 성리학자 한강 정구와 그 제자들이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조선 선조 대 성리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로, 이후 퇴계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한강 정구가 제자를 기르기 위해 건립한 회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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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정구와 그의 문인들에 의해 경상북도 성주에서 시작되어 낙동강 중하류에 걸쳐서 성립된 학단. 한강학파(寒岡學派)는 정구(鄭逑)[1543~1620]의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가문적 배경과 학통상의 지위에 힘입었다. 정구는 가문적으로는 한훤당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외증손이며, 학통상으로는 이황(李滉)과 조식(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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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에서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행정은 국가 권력 분립이나 국가 통치 작용 측면에서 입법과 사법을 제외한 국가 작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이나 주민들의 일상적 삶에 필요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공적 기관들의 활동들 가운데, 입법과 사법적 측면의 활동을 제외한 공적 기관의 활동을 가리킨다. 행정은 일반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