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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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아래에 있는 하연 선생 묘와 뱀내장에 관한 이야기. 일제강점기 당시 부천군 소래면 면장의 꿈에 조선 제4대 왕 세종 때 정승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이 나타나 소시장[우시장]이 자신의 묘 근처에 생겨 시끄럽다고 하여 소래면사무소 앞으로 이장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하연 묘를 옮기게 된 사연」은 2004년 시흥시와 한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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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관곡지에 연꽃을 심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증조할아버지는 강시(姜蓍), 할아버지는 동북면 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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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거모동은 시흥시 중동부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군자동에서 관할한다. 거모동은 바닷가에 있는 마을로 넓은 들이었는데, '들'이 '틀'로 변하였다가 '털'로 되어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지형이 거머리처럼 생겨 거머리 또는 거모리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종합적으로 ‘검은 갯마을’이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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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영응대군을 모시는 재실. 경효재(敬孝齋)는 조선 세종의 8남 영응대군(永膺大君)[1426~1467]의 재실로 시호(諡號)인 경효(敬孝)를 취해 명명하였다. 영응대군의 휘(諱)는 염(琰)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으로 봉해졌다가 1443년(세종 25) 역양대군(歷陽大君)으로, 1447년(세종 29) 다시 영응대군으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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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구종직의 묘. 구종직(丘従直)[1404~1477]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정보(正甫), 호는 백결(白潔), 시호는 안장(安長)이다. 아버지는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 구양선(丘揚善), 어머니는 선공감정(繕工監正) 공성길(孔成吉)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式年)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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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군자봉의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 마을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에 남산이 있다면 경기도 시흥시에는 군자봉이 있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 능곡동 사이에 자리한 높이 198.4m의 봉우리이다. 정확히 방어 시설인지 봉수대의 흔적인지 단언할 수 없으나, 군자봉에는 방어 시설로 보이는 흔적과 각종 토기류나 석축 잔해가 발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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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기우제를 지냈던 터. 대야동 우사단지(雩祀壇址)는 소래산 능선에 있으며 조선시대 인천부의 우사단(雩祀壇) 터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곳의 지표에는 제단의 구체적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빙하는 문헌 자료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곳에 석렬(石列)로 단을 쌓은 모습이 있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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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 통신 제도의 기록과 흔적. 봉(烽)은 횃불, 수(燧)는 연기를 말한다. 봉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전통 시대에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제도이다. 주로 적의 침입이나 내란 혹은 군사적인 소요를 중앙에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군사적인 목적의 봉수는 12~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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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흥 지역의 문벌이 높은 집안 또는 그 자손. 지금의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부와 안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왕도의 직할지로서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던 유력 정치 세력의 재향(在鄕) 기반이기도 하였다. 경기 지역의 사족(士族)들은 향촌에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여 거주하다가 관직으로 현달(顯達)하면 생활 기반을 한양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향촌에 존재한 그들의 선영(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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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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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영향을 주었던 조선시대의 소금 수취 제도. 소금은 식생활의 필수품이자 국가의 중요한 세금원이었다.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소금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국가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정책으로 기록에 담기 시작한 때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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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소래산에 있는 산림욕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산림. 소래산의 ‘소래(蘇萊)’란 지명은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냇가에 숲이 많아 솔내[松川]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소래산은 높이 299.4m의 산으로, 인근의 인천광역시·경기도 부천시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자연 경관이 빼어난 산으로 꼽힌다. 경기도 시흥시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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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하연을 모시는 사당. 소산서원(蘇山書院)은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의 재실이다. 소산(蘇山)이란 소래산(蘇萊山)을 의미한다. 하연의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옹(新稀翁)이다. 하연은 정몽주(鄭夢周)의 제자로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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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선정한 경관이 아름다운 아홉 곳의 명소. 시흥 9경은 시흥시를 대표하는 섬, 산, 공원, 저수지 등 9개의 아름다운 경관을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선정한 명소를 말한다. 제1경은 오이도낙조(烏耳島落照)[오이도에서 바라보는 낙조]이다. 오이도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원래는 섬이었으나 매립하여 육지와 연결되었다. 2005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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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신천동은 경기도 시흥시 북서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따로 관할하는 법정동은 없다. 신천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천부 신현면의 신촌리(新村里)와 사천리(蛇川里)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신천리’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사천은 하천의 모양이 뱀처럼 구불구불하여 얻은 이름이다. 신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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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물살을 조정하여 물고기를 잡도록 한 어로 도구 혹은 그것이 설치된 장소. 어량(魚梁, 漁梁)은 물이 흐르는 곳에 물살을 제한하여 그곳에 함정 어구(漁具)를 놓아 고기를 잡도록 한 곳을 일컫는다. 어량은 어구를 설치한 모양이 교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는 어량보다는 어전(漁箭)이라는 명칭이 실록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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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의 재실. 연성재(蓮城齋)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무덤을 관리하고 묘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齋室)이다. ‘연성(蓮城)’이란 시흥의 별칭으로, 강희맹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연꽃 씨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를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관곡지(官谷池)에 심어 널리 퍼지게 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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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여덟 번째 왕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염(琰),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의 증조할아버지는 태조, 할아버지는 태종,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로 청송 심씨(靑松沈氏)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처음에 여산 송씨(礪山宋氏) 판중추부사(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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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자 영응대군 묘와 신도비.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이다.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로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영흥대군(永興大君)에 봉해졌다가, 1443년(세종 25)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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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芸亭). 이숙번(李淑蕃)[1373~1440]의 증조할아버지는 이부시랑(吏部侍郎) 이희(李禧), 할아버지는 전리판서(典理判書) 이사정(李思正),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경(李坰), 어머니는 영양 남씨(英陽南氏) 전리판서 남휘주(南輝珠)의 딸이다. 부인은 청주 정씨(淸州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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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지역 일대를 1413년부터 1460년까지 관할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조선 초기 인주(仁州)로 불리던 인천광역시는 1413년(태종 13) 고려 왕실의 잔재 청산과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중앙집권 강화를 위하여 경기도 인천군(仁川郡)으로 강등, 축소되었다. 당시 경원부(慶源府)의 옛 이름인 인주의 '인(仁)' 자와 주·부·군·현에 '산(山)'이나 '천(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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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지(官谷池)는 조선시대부터 시흥 지역에 세거한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조선 제7대 왕 세조 때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이 중국 명나라 난징[南京]에서 가져온 연꽃을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시흥 지역이었던 안산군의 별호(別號)를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딸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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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자연적 대상이나 조상 숭배를 위해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내는 유교 의례. 제례(祭禮)는 유교 의례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정성껏 음식을 올리고 배례(拜禮)하는 행위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 의례의 일부분이며 일반 가정과 달리 국가 차원에서는 다양한 신에게 제물(祭物)을 차려 놓고 제례를 지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조상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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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시대 안산군의 사직단 터로 전하는 유적. 사직단(社稷壇址)이란 사(社)와 직(稷)의 두 신을 모신 제단이다. 사는 토지신, 직은 곡물신을 말한다. 땅과 곡식은 고대 농업국가에서 생존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사직단은 기원전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도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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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공적인 일에 마필을 공급하던 곳. 중림역(重林驛)은 조선시대 중림역도(重林驛道)에 딸린 7개소 속역(屬驛)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역원(驛院) 제도는 고려시대의 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태종~세종 연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역로망을 구축하였다. 경기도에는 대로(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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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묘·신도비·서원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옹(新稀翁).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하즙(河楫), 할아버지는 대사헌 하윤원(河允源), 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使) 하자종(河自宗), 어머니는 진주 정씨(晋州鄭氏)로 이조판서 정우(鄭寓)의 딸이다. 하연(河演)[137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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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의 묘. 하연(河演)[1376~1453]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이다. 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事) 하자종(河自宗), 어머니는 이조판서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96년(태조 5)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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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하우명을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세운 붉은 문.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알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한다. 정려는 건물의 여부나 대상에 따라 세분된다. 건물 없이 문을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