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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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배나무에 있는 원씨 가문 산소에 얽힌 이야기. 원씨 일가의 조상인 원성모(元成模)[1569~1636]가 덕물도(德勿島)[지금의 옥구도]에서 활을 쏘자 배나루 산 중턱까지 날아와 화살이 떨어진 곳에 묘를 쓰니 집안이 번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활을 쏘아 명당터를 맞힌 원씨 가문」 이야기는 1988년 시흥군에서 편찬한 『시흥군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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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포함된 현재 경기도 시흥시 일대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전국 지도첩으로 70여 장의 목판에 새겨 22첩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지리지를 집대성한 지도로서, 우리나라를 북에서 남까지 동서로 끊어 22폭으로 나누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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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팔로분지도』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각 도를 각각 한 장에 그려 넣은 지도로 각 군현의 이름을 비롯하여 하위 행정구역의 명칭·산·하천 등을 표기해 놓았다. 한 폭의 지도에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다 보니 지도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동국팔로분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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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실상을 기록한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 전국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전국 지리지이다. 조선 후기 각 지방의 지리적 특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조선 후기 전국의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묶어서 편차(編次)한 것으로 별도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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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고 있는 지도. 『지도(地圖)』는 소매에 넣을 수 있는 수진본(袖珍本)으로 『여지도첩(輿地圖帖)』에 수록된 채색 필사본 지도이다. 지도 뒷면에는 국가의 기일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이 철종[재위 1849~1863]까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지도』는 고종[재위 1863~1907] 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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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산. 길마산은 높이 111m의 산으로 뒷방울저수지에 바로 붙어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 낚시꾼이 많이 찾는다.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를 닮았다고 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정왕동 함줄마을에 사는 토박이들은 길마산이라 부르며, 뒷방울저수지를 찾는 외지인이나 시민들은 방울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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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마유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군자동, 장곡동, 연성동, 월곶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마유면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오는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와 1871년(고종 8)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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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는 시흥시의 서남쪽 끝에 있는 섬이다. 각종 어패류가 많이 산출되는 관광지이자 신석기시대 이래 선사 유적이 여러 차례 발굴되어 시흥 오이도 유적은 사적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오이도는 원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서쪽 지역으로 육지에서 10리[4㎞] 정도 떨어진 섬이었다.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염전 지대를 조성하면서 안산시와 이곳 사이로 제방이 놓이면서 육지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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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 통신 제도의 기록과 흔적. 봉(烽)은 횃불, 수(燧)는 연기를 말한다. 봉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전통 시대에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제도이다. 주로 적의 침입이나 내란 혹은 군사적인 소요를 중앙에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군사적인 목적의 봉수는 12~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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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원성모의 묘. 원성모(元成模)[1569~1637]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경범(景範), 호는 송운(松耘)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원계검(元繼儉),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 원호영(元虎英)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을 모집하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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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을 잇는 도로. 정왕대로는 시흥시 정왕동 옥구고가삼거리를 기점으로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신길고가사거리를 종점으로 하는 도로이다. 시흥시 구간은 정왕동 시화국가산업단지의 택지 지역을 가로로 지난다. 정왕대로는 시흥시 정왕동을 지나고 있어 도로명이 부여되었다. 정왕동은 마을에 있는 산에 봉화대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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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정왕동은 정왕산 인근에 민가가 형성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왕산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이다. 이 지도의 「안산군」 산천조(山川條)에는 “正往山在郡西三十里 熢燧在此(정왕산재군서삼십리 봉수재차)”라 하여 정왕산이 안산군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30리[약 11.8㎞]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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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시화국가산업단지를 가로지르는 소하천. 정왕천(正往川)은 시흥시 정왕동에서 시작하여 시화국가산업단지를 지나 시화호로 흘러 들어간다. 본래부터 하천의 물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시화국가산업단지를 건설하면서 빗물이 흐르는 배수로의 성격을 지니도록 조성한 인공 하천이다. 유로는 시가지의 도로망과 평행한 직선 형태이다. 정왕1교 사거리부터 하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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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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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제작한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축척이 동일한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제작되었으며 이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기초가 된 채색 필사본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전국의 지도를 제작하던 과정에서 만들어 낸 중간 단계의 결과물로서 현재 전해지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청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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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에 있던 자연 마을. 평안촌(平安村)은 군자염전 제방 축조 공사 때 평안도 사람들이 집단 이주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6.25전쟁 후 평안도, 황해도 피란민 및 염전 활동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이주민들로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시화지구 개발로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며 옛 모습을 잃었다. 평안촌은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