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후기 경상남도 양산에 있던 지역의 보발(步撥) 역참(驛站). 조선 전기의 역참 제도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기능이 거의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원인은 말 값이 뛰어 역마 확보가 어려워졌고, 역리의 도망과 그에 따른 역호의 쇠망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역마의 남발과 역전의 사유화, 그리고 국가 기강의 해이로 찰방 등의 작폐가 심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거치...
조선 중기·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던 보발(步撥) 역참(驛站). 1597년(선조 30) 5월 집의(執義) 한준겸(韓浚謙)이 명(明)나라의 예에 의거, 파발을 설치하여 변방의 문서를 전하도록 하였다. 그 기준은 기발(騎撥)은 매 20리마다 1참(站)을 두고, 보발(步撥)은 30리마다 1참을 두도록 건의함으로써 서발(西撥)·북발(北撥)·남발(南撥)의 3대로를 근간으로 한 파발 제...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