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울 유학생 도진호로부터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학생 강재호 등과 함께 1만 매를 인쇄하여 전국적으로 배포할 때 김경환은 경상북도 선산·상주 지역에서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이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였다. 그러다 박장호 휘하에서 번시후[本溪湖] 총관으로 임명을 받아 활동하였다. 그 후 지령에...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서울에서의 3·1운동에 참여한 오택언(吳澤彦)이 한용운의 밀지에 따라 3월 5일 「독립선언서」를 지닌 채 통도사에 도착하여 승려·유림 등과 함께 거사를 모의하여, 3월 13일 신평 장터에서 장꾼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때 김진옥은 김상문(金祥文)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약하다가 검거되어 징역...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기는 1919년 1월부터 재경성 의학전문학교 대표들과 함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운동을 위한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이에 김형기는 각급 학교 대표들과의 모임을 통하여 학생들의 결속을 공고히 하였다. 2월에는 민족 대표 중 한 사람인 이갑성에게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