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헌이 있던 중앙동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는 양산향토사연구회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다. 법인단체는 아니지만 양산의 향토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75세의 고령이신 정진화 선생이 『양산읍지』의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진화 선생은 30년 가까이 경찰공무원과 물금면장을 역임한 뒤 향토의 역사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20년 넘게...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