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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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전해 내려오는 통도사 사리탑에 관한 사찰연기담. 통도사와 관련한 설화는 자장율사의 창사 설화, 대웅전 중건에 따른 설화, 그리고 사리탑에 대한 설화 등이 있다. 이들 설화는 신기한 사건을 통해 불교 도량의 신성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승의 목적은 불교 교화에 있다. 「통도사 사리탑」은 『삼국유사(三國遺事)』권3 「탑상」편에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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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무력의 이름 표기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형왕의 둘째아들 무력(茂力)으로 되어 있다. 구형왕의 셋째아들 무력(武力)으로 표기된 『삼국사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삼국유사』 김유신조에는 호력(虎力)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고려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단양적성비에는 ‘사탁부(沙啄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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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삼국사기』김유신전과는 달리『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 인용된 문무왕의 제서(制書)에는 김서현이 구형왕의 손자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 잡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김유신비」에는 김소연(金逍衍)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며, 아버지는 김무력이다. 부인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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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과에 속한 새. 몸길이 약 45㎝, 부리 2.9~3.9㎝, 날개 18.6~22.1㎝, 꼬리 19.7~26.4㎝, 부척(跗蹠: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의 부분) 4.7~5.5㎝, 몸무게 190~287g이다.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은 흰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주색 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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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년 원효대사가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 원효산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석굴 사원. 미타암은 국도 7호선에서 덕계와 서창의 중간 지점에 있는 주진마을 천성산(千聖山)의 중턱에 위치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다. 646년(선덕여왕 15)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원효대사가 창건한 89암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920년(경명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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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부처의 유골이나 불상을 안치하고 예불을 드리기 위해 세운 구조물. 경상남도 양산시의 불교건축은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이중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불전으로, 1997년 1월 1일자로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유물들은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당시의 것은 아니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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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불상을 모셔놓고 공적으로 불교신행을 행사하는 장소. 양산에는 통도사, 내원사·원효암·홍룡사·신흥사·용화사·미타암·계원사 등 8개의 전통사찰이 있다. 이들 사찰은 국보·보물·지방문화재 등을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의 창건 연기로 볼 때도 근대 이전에 창건된 중요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종단별로 보면,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한 사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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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전해 내려오는 원효대사 관련 이야기. 고승 원효와 관련된 설화로, 원효가 수도한 자재암 가까이에서 요석공주와 설총 모자가 머물렀다는 이야기이다. 서울의 소요산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된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산막마을은 천성산 기슭의 산골마을로, 이 마을 남쪽 산등성이를 넘으면 원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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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 미타암 석굴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나발의 머리에 육계는 큼직하며, 어깨까지 늘어져 내려온 긴 귀와 원만한 상호, 넓은 어깨 등 당당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대의(大衣)는 통견식으로 착의하였으며 내의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옷주름은 촘촘한 U자형으로, 한 주름 건너 가운데가 끊어져 흘러내리고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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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대웅전과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신라시대 석조 계단.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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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영축사와 관련한 기록 문헌.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영축산에는 자장이 통도사를 창건함으로써 계율 사상을 중심으로 한 불교 흐름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자장과 비교하여 거의 동시대이거나 한 세대 뒤의 인물인 낭지를 필두로 한 또 다른 불교 흐름도 공존하고 있었다. 「영축사기[靈鷲寺記]」와 이를 인용한 『삼국유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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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화엄종을 개창한 승려. 신라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하였다. 성은 김씨이며, 김한신(金韓信)의 아들로서 계림부(鷄林府) 사람이다. 의상대사는 19세 때 황복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원효(元曉)와 함께 중국으로 가던 중 요동(遼東)에서 고구려 군에게 붙잡혀 정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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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통도사를 창건한 승려. 자장율사는 신라에 화엄 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승려이다. 자장율사가 생존했던 시기는 신라가 삼국 통일의 과업을 성취하려는 결의를 굳히는 시기로서 자장율사가 담당한 역할은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컸다.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던 자장율사의 아버지인 김무림은 불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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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산. 가지산 도립공원에 속하며, 낙동정맥[태백산맥]상의 영축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산맥이 지경고개에서 경부고속국도를 관통시키고 국도 동쪽에서 천성산과 나란히 웅장하게 솟아 있는 산이다. 정족산을 솥발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데, 솥발산을 한자로 옮긴 것이 정족산(鼎足山)이다. 정상 동쪽 주능선에는 무제치늪이 있어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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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원효대사·의상대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성산의 지명 유래담’과 ‘원효산 전설’을 아울러 「천성산 전설」이라고 한다. 천성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남서쪽으로 원효산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양산시가 두 산의 명칭을 천성산으로 통합했다. 1989년에 발간된 『양산의 문화』에 수록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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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서 불교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피은」조에 실려 있으며, 1983년에 발간된 『내 고장 전설』에 재수록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 이천마을 포천산에 사람이 일부러 깎은 듯한 석굴이 하나 있다. 옛날 다섯 비구가 이곳에서 아미타불을 외우며 극락세계를 구한 지 몇 십 년에, 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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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통도사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라고 한다. 이는 통도사의 사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며,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가 석가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불보(佛寶) 사찰로 알려진 통도사에는 진신사리와 가사를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사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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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이 있던 중앙동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는 양산향토사연구회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다. 법인단체는 아니지만 양산의 향토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75세의 고령이신 정진화 선생이 『양산읍지』의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진화 선생은 30년 가까이 경찰공무원과 물금면장을 역임한 뒤 향토의 역사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20년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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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서 낭지·원효·의상대사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낭지선사의 일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피은」 ‘낭지승운 보현수(朗智乘雲 普賢樹)’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옛 양산읍 호계리]의 반고굴은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굴이다. 원효는 화랑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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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朴堤上)은 4세기 말 5세기 초반에 활동한 신라 사람으로, 신라의 변경 지대인 양산 지방의 관리(혹은 세력가)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왜·백제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왕자 두 명을 고구려와 왜에 각각 인질로 보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두 아우를 구하고자 하는 눌지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