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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906
한자 鄭漢鎔
영어음역 Jeong Hany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진주(晋州)
성별
본관 연일(延日)
대표경력 의병장

[정의]

조선 말기의 의병.

[가계]

본관은 연일. 진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내금위장을 지내는 등 유력한 가문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일찍이 등과한 후 1896년 진주 의병장을 맡아 노응규진주성 점령에 큰 공을 세웠다. 의병투쟁이 끝난 후 의병이 해산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였다.

의병해산과정에서 함께 진주의병을 이끌었던 의병장 노응규를 투옥한 일로 인해, 당시 유림들에게 관군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자료 부족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으며, 관군과의 결탁설은 노응규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반론도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2 내용 수정 정한용이 노응규를 투옥한 사건이 관군과의 결탁때문이라는 당시 유림 통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기에 관련 문장을 수정하고 이에 대한 반론이 있음을 명기함.
2011.07.07 [수정] 본관 진주-> 연일로 수정
이용자 의견
b****** 진주성 함락 후 다시 빼앗긴 것과 노응규 가계가 치명타를 입은 것이 정한용의 배신이라는 설이 근거가 없다면 충분한 업적이 있는데도 정부에서 서훈을 주지 않는 이유와 다른 의병은 적발되는대로 사살, 체포되고 아니면 도주하여 전 가족이 파탄되는데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히고도 진주 까까운 옥종에서 무사히 살았던 이유 설명 필요
  • 답변
  • 디지털 진주 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련 사항은 해당 지역 기관 등에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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