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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대도호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019
한자 晋陽大都護府
영어음역 Jinyang Daedohob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392년(태조 1)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392년(태조 1)
폐지연도/일시 1402년(태종 2)연표보기

[정의]

1392년에서 1402년까지 진주에 설치된 행정 관서.

[개설]

대도호부(大都護府)는 그 읍격(邑格)이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부(府)와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는 도호부(都護府)의 중간에 위치하며 목사(牧使)가 파견되는 목(牧)과 같다.

[제정배경 및 목적]

1392년(태조 1)에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내향이라고 하여 진주목(晋州牧)을 높여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라고 하고 진양대도호부사(晋陽大都護府使)를 두었다.

[관련기록]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진양대도호부사 임명과 관련된 사항 및 진양대도호부를 다시 진주목으로 환원시켰다는 기사가 보인다.

[내용]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에 의하면 대도호부에 서원(書員) 30명, 일수(日守) 40명, 외노비(外奴婢) 450명, 향교노비 25명, 관둔전(官屯田) 50결, 공수전(公須田) 15결이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진양대도호부도 여기에 근거하여 관원 등이 지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변천]

1402년(태종 2)에 다시 진주라 하고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를 진주목(晋州牧)으로 내려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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