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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38
한자 鄭起龍
영어음역 Jeong Giryong
이칭/별칭 경운(景雲),매헌(梅軒),충의(忠毅),무수(茂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아버지 정호(鄭浩)
아내 정경부인 강씨
출신지 곤양
성별
생년 1562년연표보기
몰년 1622년연표보기
본관 곤양
경운(景雲)
매헌(梅軒)
시호 충의(忠毅)
초명 무수(茂壽)
제향 충렬사(忠烈祠)[경상북도 상주시]
대표관직 통정대부|경상우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경상우도수군절도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곤양.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진주정씨에서 분적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중시조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정호(鄭浩)의 아들이다. 초명은 무수(茂壽)이나 1586년(선조 19) 무과 급제 후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생애]

1562년(명종 17) 출생하여 1622년(광해군 14) 60세로 별세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1590년 경상우도절도사 신립(申砬)의 휘하에 들어가 다음해 훈련원봉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병마사 조경(趙儆)의 휘하에서 종군하면서 공을 세우고, 이어 거창·김천·곤양 등지의 전투에서 선전하여 왜적의 호남 진출을 막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회령부사와 상주목사를 지내고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토왜대장(討倭大將)이 되어 공을 세우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승진하였다. 왜란이 끝난 뒤 1601년 다시 경상도방어사가 되어 왜군의 재침에 대비하였고, 다음해부터 김해부사, 밀양부사, 울산부사를 차례로 지냈다. 1610년(광해군 2)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의 직을 맡았다. 1616년에 진주 병사(兵使)로 부임하였다. 1622년 통영의 진중에서 별세하였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하여 거창싸움에서 왜군 500여명을 격파하고 김산전투에서 포로가 된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을 구출하였다. 이어 상주목사 김해(金澥)의 요청으로 상주판관이 되어 상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토왜대장으로서 고령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왜장을 생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 성주·합천·초계·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고 경주·울산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98년에는 명나라 군대의 총병(摠兵)직을 대행하여 경상도 방면에 있는 왜군의 잔적을 소탕하였으며, 왜란이 끝난 후에도 왜군의 재침을 우려하여 해안 방어에 힘쓰다 진중에서 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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