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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062
한자 河德望
영어음역 Ha Deokmang
이칭/별칭 첨경(瞻卿),양정재(養正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판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아버지 하철(河澈)
어머니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
출신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
성별
생년 1664년연표보기
몰년 1743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첨경(瞻卿)
양정재(養正齋)
추증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생애]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드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여막을 떠나지 않았다. 모친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소생시켜 아흔이 될 때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그 위에 정자를 지어 광영정(光影亭)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재실을 지어 양정(養正)이라 하고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뜻을 드러냈다.

1735년(영조 11) 김재로(金在魯)가 경연에서 왕에게 진주의 하덕망이 영남에서 뛰어난 인재라고 추천하고, 1737년에는 경상감사 민응수(閔應洙)가 숨은 선비라고 조정에 아뢰자, 임금이 사간원의 대간(大諫)으로 임명할 것을 명하였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1743년 하덕망이 별세한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을 증직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학문과 사상]

남명학(南冥學)을 가학으로 이어오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남명 조식(曺植)을 흠모하였다. 인근의 선비 서계(西溪) 박태무(朴泰茂) 등과 함께 『근사록』 등을 강론하였으며, 1731년에는 겸재 하홍도(河弘度)를 모신 모한재(慕寒齋)에서 경서를 강론하기도 했다. 별세 직전인 1741년에는 『남명집』의 개정을 논의했다.

[묘소]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마을에 있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행장을 지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0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모한재(慕寒齋)에서 경서를 강론하기도 했다 〇 모한재(慕寒齋) 지명 태깅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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