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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066
한자 河崙
영어음역 Ha Ryun
이칭/별칭 대림(大臨),호정(浩亭),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하윤린(河允潾)
출신지 진주(晋州)
성별
생년 1347년연표보기
몰년 1416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대림(大臨)
호정(浩亭)
시호 문충(文忠)
상훈 전세 100결
대표관직 경기도관찰사|충청도순찰사|좌의정

[정의]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생애]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배되었다가 위화도회군 이후 복관되었다. 조선 개국 후 1393년(태조 2)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한양 천도를 관철시켰으며, 1398년에는 충청도순찰사로 있으면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우고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진산군(晋山君)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에 일어난 제2차 왕자의 난 때도 이방원을 도왔고, 그해 명나라 태조의 국상 때 진위 겸 진향사로 가서 정종의 왕위 계승을 승인받고 돌아왔다. 태종이 즉위하자 죄명공신 1등이 되었고, 1402년(태종 2) 명나라 성제의 등극사(登極使)로 조선왕조의 완전한 인준을 증거하는 고명인장(誥命印章)을 받아와 조선 건국의 기반을 닦는 데 큰공을 세웠다. 1412년 좌의정에 올랐다가 1416년 70세로 벼슬을 그만두고 진산부원군이 되었다. 그해 노구를 이끌고 함경도에 있는 선왕의 능침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정평관아에서 별세하였다.

[학문과 사상]

시문에 능하였고, 음양·의술·지리에 능하였다. 또한 예악(禮樂)과 제도에 능통하여 자세히 정하여 개국과 대명외교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저서]

『동국사략(東國史略)』과 『태조실록』편찬에 참여했으며, 문집 『호정집』을 남겼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벼슬에서 물러나려 하자 태종이 극구 만류하였으나 고집을 꺾지 않자 친히 교서를 써서 진주의 전세 100결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하륜은 성상께서 주신 것을 어찌 감히 사사로이 쓸 수 있겠는가 하고 따로 향사당(鄕射堂)을 지어 교서를 모셔두고 전세는 시골 노인들을 위해 쓰게 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에 봉안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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