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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084
한자 河世應
영어음역 Ha Seeung
이칭/별칭 응서(應瑞),지명당(知命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판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마을
성별
생년 1671년연표보기
몰년 1727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응서(應瑞)
지명당(知命堂)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생애]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며 교유하였다. 젊어서 지조와 절개가 남달라 항상 나라를 걱정했으며, 1687년(숙종 13)에 진사시에 합격을 했으나 조금도 영화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 조정은 장희빈(張禧嬪)의 사사로 민심이 흉흉한 때였다. 얼마 후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과 소론들간의 당파 싸움은 극에 달했다. 이때 하세응장희빈의 신원소를 올리기로 결심하고 상소문을 썼으나 이 초고를 읽은 이만부의 만류로 실행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 병사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활동사항]

당시 진주지역에서 유림의 많은 일들을 주관했다. 연산군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진주 선비 지족당 조지서(趙之瑞)를 모신 신당사(新塘祠)의 편액을 조정에 청하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 중 어진 선비 6인을 대각서원(大覺書院)에 모시는 일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진주의 정충단을 창렬사로 올려 위패의 순서를 바로잡고 의식을 정하는 일도 했다.

[저서]

1914년경에 간행된 『지명당문집(知命堂文集)』이 있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구태동 독산에 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이 묘갈명을 찬(撰)하였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8.24 수정 [가계] 오탈자 수정
2011.07.0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이 묘갈명을 撰하였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이 묘갈명을 찬(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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