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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104
한자 河潤寬
영어음역 Ha Yungwan
이칭/별칭 택후(澤厚),인재(忍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성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아버지 하호(河灝)
출신지 진주(晋州)
성별
생년 1677년연표보기
본관 진양(晋陽)
택후(澤厚)
인재(忍齋)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택후(澤厚), 호는 인재(忍齋). 하호(河灝)의 아들이다.

[생애]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윤관(河潤寬)은 일곱 살 때부터 뜻이 맑고 깨끗하며 고상하고, 품은 뜻과 행실이 발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바르고 총명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찍부터 과거는 포기하고 다만 향시에 급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과거를 포기한 것은 현달을 바라지 않고 다만 성현의 학문이 좋아 이를 몸소 체득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집안의 동생이나 자녀, 조카들에게도 재물을 늘리는데 치중하지 말도록 경계하여 이르기를 ‘뜻을 손상시키고 허물을 더하는 것이니 심히 옳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엄숙하고 공정한 성격이지만, 따뜻하고 온화한 면도 있어 사람들이 후배로서 자리에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자는 형주(涥酒)를 마시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도와(道窩) 이덕윤(李德潤), 태와(台窩) 하필청(河必淸), 소암(素菴) 이덕관(李德寬) 등 당시 지역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평생 학문에 정진했다.

[의의와 평가]

하윤관의 학문은 그의 아들인 하응회(河應會)와 손자인 죽와(竹窩) 하일호(河一浩)에게로 이어졌다. 하윤관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진주에 터전을 잡고 살면서 진주가 문향(文鄕)으로 이름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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