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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시목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450
영어음역 Omi-ri Simok Yujeok
영어의미역 Simok Archaeological Site in Omi-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지도보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집필자 고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조선시대의 건물지
지정면적 14,190㎡[4,300평]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 산 187-2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마을에 있는 생활유적.

[개설]

오미리 시목 유적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설예정 구간에 대한 구제발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체유적 중에서 일부만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조선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묘 1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기둥구멍군 등이 조사되었다.

[명칭유래]

오미리 시목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지리적으로 하천과 계곡의 충적대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자연촌락과 분묘가 형성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진주군 오산면 삼항동·오미동·묵곡동, 명석면 외팔미동, 대평면 대평동 등의 일부지역을 통합하여 오미리라고 하였다.

이후 오미리를 구성하는 자연촌락단위로 개편되면서 시목마을과 오미마을으로 분리되었는데, 남강에 인접한 산사면의 구릉지역에 자연촌락이 구성되어 있으며 중심지는 오미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미마을에서 서북쪽으로 긴 협곡을 따라 여러 개의 자연촌락이 구릉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을 통칭하여 시목마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원래 오산면 시목촌으로 불리었는데, 『진양군사』에 의하면 예부터 주위 산야에 감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하여 감나무골이라 불리는 것에서 유래한다.

[위치]

오미리 시목 유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시목 산187-2 일대 구릉 남사면 해발 약 51m~68m에 위치하고 있다. 오미리 일대는 남강에 인접한 산사면의 구릉지역에 구성된 자연촌락으로, 네 갈래 길이 교차되는 곳이기도 하다. 즉 함양·산청 가는 길, 시목 석티고개를 넘어 덕산으로 가는 길, 서재·가화를 거쳐 사천만으로 가는 길, 그리고 진주로 가는 길이 교차되는 곳이었다.

교통의 요지인 관계로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미마을에서 서북쪽으로 긴 협곡을 따라 여러 개의 자연촌락이 구릉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을 통칭하여 시목마을이라고 한다.

[발굴조사경위]

오미리 시목 유적은 한국도로공사에서 시행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매장문화재 지표조사에서 확인됨으로써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졌다. 이에 구제발굴의 성격을 띠고 1995년 11월 16일부터 12월 30일까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결과]

오미리 시목 유적은 고속도로 건설예정 구간에 대한 구제발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전체유적 중에서 일부만이 조사되었다. 원래 지표조사 당시에는 분묘유구가 주된 조사대상으로 판단되었으나, 실제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 무덤 1기만 확인되었고, 조선시대 건물지 등의 생활유구가 다수 조사되었다.

[형태]

조사된 유구는 통일신라시대 묘 1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 기둥구멍군, 성격불명의 구덩 등이 있다. 각 유구의 배치는 특별한 정형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유구들의 시기차도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구의 평면 형태는 대부분 타원형이나 장방형이고, 모두 구릉 경사면을 정지하여 제작하였다.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 내외부에서는 기둥구멍과 적심초석, 화구시설이 확인되었고,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화구시설은 적석시설 하부와 경사가 높은 쪽의 벽면에 이어진 형태로 설치되었다. 대체로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판석을 이용하여 양 측벽을 세우고 다시 여러 개의 판석으로 덮개를 설치하였는데, 그 용도와 기능, 성격 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당시 관아건축이나 일반 민가건축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시설로 건물의 용도와 기능에 따라 다양한 화구시설이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또한 화구시설이 없는 규모가 큰 건물지와 기둥구멍군은 일반 주거용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도자기와 옹기이다. 분청사기는 음각기법으로 문양대를 구획하고, 인화기법으로 국화문, 수초문을 부분적으로 시문하였고, 유약의 시유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백자는 바탕흙이 거친 것과 세밀한 것이 모두 보이고, 유조는 유백색과 회백색이 대다수로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오미리 시목 유적은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에 입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접지역에 자기(磁器)산지가 다수 분포되어 있어 앞으로 이 지역에 대한 조선시대 자기 가마와 생활유적의 조사가 이루어지면 유적의 성격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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