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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615
한자 徐相載-妻金海金氏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성광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열녀
아버지 김응현(金應炫)
남편 서상재(徐相載)
성별
생년 1869년 11월 6일연표보기
몰년 1934년 8월 21일연표보기
본관 김해(金海)

[정의]

근대 개항기의 효부 및 열녀.

[가계]

달성서씨(達成徐氏) 서상재(徐相載)의 아내이며, 김해김씨 후손인 김응현(金應炫)의 딸이다.

[생애]

어릴 때부터 성품이 곧고 따뜻하며 부모에게 매우 효성스러웠다. 서상재에게 출가해서는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남편을 대할 때는 예를 어김이 없었다. 또한 자녀들을 기를 때에는 자녀들이 반듯한 길로 나아가는 데 모범이 되었다.

1909년 남편 서상재(徐相載)가 병석에 누워 몹시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자 부인은 밤낮으로 곁에서 시중을 들며, 잠시도 자리에 누워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파악하고 병에 효험이 있다는 온갖 약을 지극정성으로 올렸지만, 남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 대신 자신이 병들기를 하늘에 간절히 빌었다. 남편의 병세가 매우 위독해지자, 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남편에게 먹임으로써 사흘간 목숨을 연장시켰으나 결국 남편은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남편은 임종에 이르러 “내가 이제 떠나오. 우리 어머니 홀로 다른 형제가 없으니 당신이 내가 세상에 있던 날과 다름이 없이 잘 봉양하여 주시오.” 라고 하였다. 부인 김씨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위로 늙은 시어머니 계시고 아래로 어린 자식들 많으니 내가 내 뜻대로 수행하면 뒷일을 전하기 어렵구나! 남편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데 내가 어찌 감히 무심하리오.” 라고 말하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남편을 장사지낼 때 매우 애통해 하였으며, 예를 다해 삼년상을 잘 마쳤다. 상을 마치고서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베를 짜고 바느질 하는 데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몸이 아프고 기력이 다해 엉금엉금 기면서도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만년에는 자손들과 함께 살면서 아들과 며느리가 혹시 손가락 끊은 일을 말하면 이를 꾸짖으며, “이는 부인(婦人)의 직분이니 이 뒤에 감히 이 말을 내어 네 어미의 뺨에 눈물 흐르게 하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또 자손을 엄히 가르치면서 “집을 떠나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서 학업을 이루기 바란다. 너희들이 만약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면 내가 지하에서 너희 할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마침내 천수를 누리고 집에서 별세하였다.

[묘소]

묘소는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484-3번지에 있으며, 2006년 3월 후손들이 효열비를 세웠다.

[상훈]

진주 지역 유림과 경상도 도유사가 성균관에 표창을 상신하고, 성균관 대성학원 원장인 판서 이재현 등이 연서함으로 1936년 3월 효열부인의 표창이 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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