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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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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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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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執議)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政略將軍) 강인범(姜仁範)이다. 어머니는 성주인(星州人) 여씨(呂氏)로 호군(護軍)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부인은 삭령최씨로 예조참판(禮曹參判) 웅(雄)의 딸이다. 강혼(姜渾)은 연산군과 중종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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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호(士浩).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효행이 지극하여 이름이 알려졌고 용략이 뛰어났었다. 1728년(영조 4) 무신란이 일어나자 진주영장 이석복(李碩福)과 곤양군수 우하형(禹夏亨)을 도와 큰 공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후에도 자신의 공을 절대 앞세우지 않았고 시골에 파묻혀 여생을 보냈다. 사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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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