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5년 5월 26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다. 산청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등학교)에서 근대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진주에서 살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진하(李鎭河) 등 동료들과 식민교육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978년 11월 2...
조선 말기의 의병장. 경상남도 양산(梁山) 출생으로, 원래 의원으로서 고향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하다가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양위(讓位)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907년 12월 임진강·한탄강 유역에서 활동 중이던 의병장 허위(許蔿) 휘하에 들어갔다. 1907년 12월 허위로부터 영남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받고 해...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려삼중대광 개국원훈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후손이며,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1907년 조선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봉기가 확대될 무렵,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이학로는 부장(副將)이 되어 의병활동...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타악 합주 음악. 옛날부터 진주는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교통·행정·교육·산업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도시를 이루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닷새마다 큰 장이 서면서 신명난 놀이판도 벌어졌다. 서부 경상남도에서 제일 큰 목사골 진주장(晋州場)이 설 때면 각 지방의 농악패 우두머리나 농악잽이 명인들이 팔려 와서 장...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민(汝敏).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손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벼슬길에 뜻을 끊고 후진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덕천서원(德川書院)과 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