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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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변(崔琦抃) : 현감(縣監)을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최기준(崔琦準) : 부사(府使)를 지냈으니 본관이 전주(全州)이요, 인천(仁川)에 살았다. ○ 하응구(河應龜) : 부장(部將)을 지냈고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훈에 기록되었다. ○ 하천오(河天鰲) : 수문장(守門將)을 지냈고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기록되었다. ○ 황계량(黃桂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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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어귀에 검바위 또는 검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본래 진주군 송곡면과 금동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곡동(松谷洞), 홍정동(鴻亭洞), 검암동(儉岩洞), 가토동(佳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검암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엄정(嚴亭), 운문(雲門), 차현(車峴), 신담(新潭)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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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송곡리(松谷里), 인담리(麟淡里), 금동어리(金冬於里), 성을산리(省乙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금동어리는 송곡리에 합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나누었다. 1832년(순조 32)에는 인담리를 성을산리에 합하여 송곡리, 금동어리, 성산리(省山里)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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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면은 진주시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면(面)으로, 고성군, 사천읍 등과 경계를 하고 있다. 금곡면 소속의 검암리는 동쪽으로는 가봉리, 서쪽으로는 차현마을, 북쪽으로는 송골리, 남쪽으로는 음정마을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4개 마을의 가운데가 운문마을이다. 1911년 금동어면(金冬於面)[현재 검암, 가봉리]과 송곡면(松谷面)[현재 송곡리, 정자리]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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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리는 마을 주변에 마을을 상징하는 검은 바위 3개가 있어서 검암리라 부르고, 바위 3개가 있다하여 ‘삼암리’라고도 한다. 운문은 지형이 구름가운데로 학이 나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운문을 훈을 따서 부르면 구름문이 되므로 통칭 발음상 줄여서 굴문으로 들리고 또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학은 예로부터 길조이며 부와 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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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에 있는 자연마을. 운문은 지형이 구름 가운데로 학이 나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운문의 뜻을 따서 부르면 ‘구름문’이 되므로 통칭 발음상 줄여서 ‘굴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 살던 하씨 선대 하순(河淳)이 1414년(태종 14)에 생원에 오른 사실이 있고, 그의 며느리 박씨부인이 1470년(성종 1)에 별세하고 세운 비석이 현재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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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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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에 추증된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런데 하연(河演)[문효공(文孝公)]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