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열녀. 아버지는 강순(姜淳)이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에 산으로 피난하였다. 그러나 적이 발견하고는 욕보이려고 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해 항거하다가 결국 피살당하였다. 선조 대에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다. 진주 금산리에 살았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
조선시대의 효부. 부장(部將) 강추국(姜秋國)의 딸이다. 효행이 뛰어나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바쳐 병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진주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조선시대의 열녀. 유학자 윤탁의 아내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따르면 남편인 윤탁이 병이 들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게 함으로서 소생시키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고 한다. 진주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국교(國喬), 호는 지와(芝窩).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예이며, 정신(鄭愼)의 아들이다. 진주 금산리 출신이다. 고모부인 유하(柳下) 강태중에게 학문을 배웠고, 이후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에게 집지하여 준재라고 칭찬을 받았다. 문사(文詞)를 지음에 기이하나 정기가 있고, 매우 건전하였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조선 전기의 열녀. 진주 금산리에 살았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남편 정응발(鄭應發)이 왜적을 만나 대항하다가 힘이 다하여 거의 죽게 되었는데 황씨가 풀숲 속에서 나와서 돌을 안고 돌진하여 남편을 구하였다고 한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