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대여촌
-
조선 전기의 선비,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이선(而善)·흡여(翕如),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이다. 1571년(선조 4)에 성여신의 장남으로 태어나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모촌(茅村) 이정(李瀞)[1541~1613]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아버지와 스승은 모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들이다. 노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덕여(德輿). 아버지는 성우(成祐)이고,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소산(姜小山)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성자량(成自諒), 증조할아버지는 성만용(成萬庸)이다. 부인은 진주하씨로 하충(河漴)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2년(성종 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조선시대의 종5품 관...
-
조선 시대의 효자. 윤사관(尹思寬)은 부장(部將) 윤춘란(尹春蘭)의 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의하면 윤사관이 살고 있던 집에 큰 불이 나서 노모가 방에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자 직접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어머니를 업고 나오다가 불꽃에 쓰러져 모자가 함께 죽었다고 한다. 진주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
조선 전기의 효자. 아버지는 참봉 이일민(李逸民)이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따르면, 아버지가 중풍을 앓아서 한쪽 발이 불편하였는데, 언제나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 아버지를 업고 산에 숨었는데, 아버지가 적에게 발견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자신의 몸을 던져 적과 함께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
-
조선 전기의 열녀. 효자 이경훈(李敬訓)의 아내이다.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남편과 함께 산골 깊이 피난하다 산골을 마구 뒤지던 왜적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되고 자색이 아름다운 부인은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데 달탄(達灘)에 이르렀을 때 왜적의 눈을 피해 강물에 몸을 날려 절개를 지키고 죽었다. 숙종 때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진양...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인숙(寅淑). 재예가 탁월하여 여러 번 식년과에 응시했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후에 경기전(慶基殿) 참봉으로 제수되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서울에도 집이 있어 중요 기관에 아는 이가 많았으나 높은 벼슬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네 명의 형제들과 더불어 서로 화목하니 당시 사람들이 크...
-
조선시대의 효자. 자는 자중(子中). 이공청(李公淸)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강개하고 조행(操行)이 있었다. 극진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겨, 비록 전란으로 피난해야 할 상황에서도 반드시 그 예를 다하였다. 불행히도 일찍이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진주 대여촌에 살았으며,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조선 전기의 무신. 사과(司果) 정형손(鄭亨孫)의 아들이며, 정항(鄭沆)의 아버지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진주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에 뛰어났고 명장의 풍모가 있었다. 1489년(성종 20)에 무과에 합격한 후 함경도 군관을 거쳐 우도수사(右道水使)에 올랐다. 1509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듬해 삼포왜란이 일어나 웅천(熊川)이...
-
조선시대의 열녀. 현감인 정희건(鄭希騫)의 첩이다.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정희건이 경성에서 벼슬을 하게 되자 성씨에게 글을 보내어 인연을 끊자고 하였다. 문족들이 그녀의 나이 어린 것을 가련하게 여겨 다른 이를 따르라고 권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절개를 지켰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