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자복(子馥), 호는 호은(湖隱)이다. 진주 말동에 살았다. 부모상을 당하였는데, 당시 연산군의 폭정으로 3년 상을 못 치르게 할 때였으나 개의치 않고 3년 시묘를 예대로 치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중종반정 후 1509년(중종 4) 박인의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표창을 받고, 정려가 세워졌다. 『진양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