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상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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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태운(太運)으로, 학성(鶴城) 출신이다. 진주 상사리(上寺里)에 살았다. 천성이 매우 순하고 우직하여, 친척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외족(外族)에 가난하고 의탁할 데가 없는 이들을 한집에 거느리며 키워서 남자는 장가를 보내주고, 여자는 시집 보내는 등 남을 돕는 데 힘썼다. 또한 예의범절이 발라 향리에서 모두 칭송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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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진주 어느 절의 노비로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어버이에게 바치는 효성만은 누구 못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어머니를 업고 떠돌아다니면서 걸식하여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힘을 다해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고, 담제(禫祭: 대상을 치른 다음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를 지낸 뒤 비로소 고기를 입에 넣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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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자인 사간(司諫) 모순(牟恂)의 후손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성품이 바르고 충효로웠으며 온 힘을 다해 예를 행하였다. 부모가 함께 죽자 연복 6년을 하였다. 사람들이 그 효성과 예절에 탄복하고 흠앙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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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자는 백유(伯裕). 참봉 정석찬(鄭碩贊)의 아들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의하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함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정엄(鄭嚴), 정교(鄭敎) 두 아우가 모두 명성을 얻어 이름이 났으나 과거는 여러 번 실패하여 합격하지 못하였다. 봉화훈도(奉化訓導)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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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숙성(叔成). 호는 삼계(三溪). 훈도 정관(鄭寬)의 아우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 에 의하면, 1543년(중종 38)에 진사가 되고,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올랐다. 천성이 정성스럽고 고졸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여 관원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따랐고, 백성들은 공경하였다. 세 고을에 부임하였으나 추워도 앉을 방석이 없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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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정승개는 천성이 착하고 친족들과 돈독하게 지냈으며 이웃에게 화목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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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전주최씨 최운개(崔云凱)의 딸로, 진주인 승사랑(承仕郞)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 죽음을 결단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를 넘겨 1593년에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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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계인(系仁), 호는 용담(龍潭). 첨정을 지낸 삼계 정밀(鄭蜜)의 아우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1570년(명종 3)에 장원으로 진사가 되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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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진사 정대호(鄭大護)의 아들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어머니가 병들어 점점 심해지니 손가락을 잘라 약에 타서 올리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