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농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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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5년 5월 26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다. 산청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진주고등학교)에서 근대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진주에서 살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진하(李鎭河) 등 동료들과 식민교육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978년 11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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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구국운동의 이유로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경상북도 유림단장 김창숙의 아들이다. 1927년 경상남도 진주의 진주고등보통학교, 진주공립농업학교,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진주제일보통학교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해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광주학생 독립운동보다 앞서 일어난 것으로, 1927년 6월 진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생들의 동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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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하여 힘쓰는 애국운동. 진주사람들은 “진주에는 진주정신(晋州精神)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진주지역의 주민들이 보여준 애국 및 외세저항의 진주성전투, 1862년(철종 13)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해 저항하였던 농민운동,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진주동학군의 치열한 전투, 일제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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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화가. 내고 박생광은 말년 팔순의 나이에 채색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진주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한국 화가이다. 박생광은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나왔다. 1920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교토[京都]에서 다치가와미술학원[입천산운미술학원(立川酸雲美術學院)]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23년에는 교토시립회화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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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호는 여산(黎山). 1908년에 경상남도 거제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인척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16세 때 고학을 결심하고 통영의 사립청년학원을 거쳐 진주농업학교에 진학하여 그림에 뜻을 두게 되었다. 오랫동안 개천예술제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진주미술발전에 크게 기여를 한 서양화가로 1984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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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인 교장 이마무라의 송덕을 기려 세운 비. 일본인 이마무라 다다오[금촌충부]는 1925년 5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진주농업학교(후의 진주산업대학교)에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37년 6월 12일 진주농업학교 교정에서 경상남도지사와 하동군수 등 기관단체장과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마무라 교장의 송덕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연유는 그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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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촉석루 풍경화의 대표 화가. 조영제의 호는 효석(曉石)으로, 1912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의 기법을 습득하였으며, 광복 전에는 진주의 대표적인 선전(鮮展) 수상작가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진주의 미술활동을 주도했다. 1984년 72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줄곧 진주에 살면서 촉석루와 함께 하는 진주인의 서정이 담긴 유화와 수묵담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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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공립농업학교와 진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전원이 동맹하여 휴학한 사건. 일제강점기에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본인 교사의 한국민족에 대한 민족차별 및 모욕적 언동에 의한 멸시에 항의하여 1927년 6월에 진주공립농업학교 2·3 학년생 중심으로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학교당국은 주모자 6명을 퇴학, 6명을 정학시켰다. 이에 대하여 학부형과 졸업생이 조정책을 강구하여 퇴학생을 무기정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