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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003
한자 姜德龍
영어음역 Kang Deokyong
이칭/별칭 여중(汝中),매촌(梅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아버지 강심(姜深)
성별
생년 1560년연표보기
몰년 1627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여중(汝中)
매촌(梅村)
추증 병조참판
상훈 선무원종공신
대표관직 함창현감|본수영장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생애]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영남지방에 진출하자 군민이 모두 산속으로 피난을 갔는데, 강덕룡(姜德龍)은 임시로 경상도 상주의 함창현감에 임명되어 제1차 진주성전투 때 공을 세우고, 이후 12회의 대소 전투에 참여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마다 승리한 공으로 절충장군에 올랐고, 이원익(李元翼)이 호남지방의 체찰사가 되어 근무할 때 강덕룡을 불러 체찰부(體察府)의 아문장(牙門將)으로 삼았고, 곧 본수영장으로 승진시켰다. 한편, 군민을 계몽시켜 단합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 조달에도 공헌하였다. 67세로 별세하자 모두들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는데, 말년에 강덕룡이 소유했던 것은 장검 한 자루와 단금(短琴) 하나가 있었을 정도로 청렴하였다고 한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사(水使) 원균(元均)의 막하에 들어가 왜군을 격파하여 공을 세웠다. 이에 경상우수사 김성일(金誠一)의 조처에 따라 임시로 함창현감에 임명되어 제1차 진주성 전투에 참여, 군기(軍器) 관리를 맡아 왜군 격퇴에 공헌하였다. 이듬해 명의 군대가 상주와 대구 등지에 주둔하고 있자, 양곡 관리와 조달을 효율적으로 하여 군사들이 매우 기뻐하였고, 특히 명나라 군대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경상우병사로 있던 정기룡 장군을 도와 성주·고령·합천 등지의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상훈과 추모]

선조 대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기록되었으며, 숙종 대에는 효행으로써 표창되어 조세가 면제되고, 철종 대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2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이원익(李元翼)이 호남지방의 제찰사가 되어 근무할 때 ->이원익(李元翼)이 호남지방의 체찰사가 되어 근무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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