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055
한자 成汝信
영어음역 Seong Yeosin
이칭/별칭 공실(公實),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
아버지 성두년
성여중|성여효
생년 1546년연표보기
몰년 1632년연표보기
본관 창녕(昌寧)
공실(公實)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제향 임천서원(臨川書院)|물계서원(勿溪書院)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우윤을 지낸 성두년(成斗年)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충절을 지킨 성여충(成汝忠)과 성여효(成汝孝)가 그의 형이다.

[생애]

1546년(명종 1) 출생하여 1632년(인조 10) 86세로 별세하였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3세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강직하여 당시의 권세가 정인홍(鄭仁弘)을 의식적으로 멀리하였으며, 말년에 병석에서 제자에게 학문하는 요지 18조목을 불러 주었는데, 이를 ‘침상신편(枕上新編)’이라 한다.

[활동사항]

임진왜란을 겪은 뒤로 선비들이 학문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여 그가 살고 있던 진주의 금산마을에 여씨향약(呂氏鄕約)과 퇴계동약(退溪洞約)을 본받아 상호부조와 학문연마를 시행케 하였고, 소학과 대학의 법도를 모방하여 양몽재(養蒙齋)와 지학재(志學齋)를 세워 향리의 후학들에게 여기서 거처하며 수업을 받게 하였더니 10년이 채 못되어 문풍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임천서원(臨川書院)과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가방리진주 부사정(浮査亭)은 1600년(선조 33)에 유림들이 성여신의 호를 따서 건립한 서재로, 현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