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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064
한자 梁山璹
영어음역 Yang Sansu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경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장
아버지 양응정(梁應鼎)
성별
생년 1561년(명종 16)연표보기
몰년 1593년(선조 26)연표보기
본관 제주(濟州)
회원(會元)
시호 충민(忠愍)
추증 좌승지
제향 정렬사(旌烈祠)|창렬사(彰烈祠)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생애]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고 한다.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창의(倡義)하여, 김천일(金千鎰)을 맹주(盟主)로 삼고 양산숙은 부장이 되었다. 그 뒤 김천일과 함께 북상하여 수원에 출진하여 활약하다가 강화도로 이진할 무렵, 곽현(郭賢)과 함께 주장의 밀서를 가지고 해로를 통해 의주 행궁(行宮)에 도착하여 선조에게 호남·영남의 정세와 창의활동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이 공으로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돌아올 때 호남·영남에 보내는 교서를 받아 남도에 조명(朝命)을 하달하였다. 적이 남도로 퇴각하자 김천일과 함께 남하하여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침공하려는 왜의 대군 앞에 군사가 부족하자 명나라 장군 유정(劉廷)의 군진에 가서 군원을 강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할 수 없이 단신으로 입성하여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사상]

성혼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천문·지리·병학에도 뛰어났다. 동서분당 때 서인으로 조헌(趙憲)과 함께 이이(李珥)·성혼을 지지하며 동인 이산해(李山海)·유성룡(柳成龍)을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상훈과 추모]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나주의 정렬사(旌烈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2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1594년(선조 27)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1594년(선조 27)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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