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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지리 서낭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374
한자 觀旨里城隍堂
영어음역 Gwanji-ri Seonangdang
영어의미역 Village Guardian Shrine of Gwanji-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신앙
양식 선돌양식
건립시기/연도 1960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행락
높이 120㎝
면적 13.2㎡[4평]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신 신당.

[개설]

관지리진양하씨(晋陽河氏)의 집성촌으로, 옷밭·섬말·관음정을 포괄한다. 관지리 서낭당은 북당·서당·남당·동당의 사방에 있었으나 동당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와서 서당과 남당이 없어져 현재는 북당만이 존재한다.

[위치]

관지리마을 북쪽 숲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별도의 당집은 없다.

[현황]

제례는 음력 12월 말 개소리나 닭소리가 없는 새벽에 지낸다. 예전에는 마을사람이 추천한 대표 3명과 1명의 축관이 북당부터 시작하여 올렸다. 제물은 그해 첫 분가하여 살림을 차린 사람을 선별하여 제기를 마련해 주고 차리게 하였다. 제기는 제례 후 제물을 차린 사람이 갖도록 하였는데 이는 새로 살림을 차린 사람에게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제관을 맡으려 하지 않아서 이장·새마을지도자·반장이 제관이 되어 지내고 있다. 제물은 관지리 소속 6개 반의 반장이 돌아가면서 담당한다. 제기를 새로 사는 관행은 지속되고 있다. 제례 물품을 장볼 때는 값을 깎지 말고 달라는 대로 금액을 지불하며, 제물은 지극히 청결해야 하고 제례 전에는 맛볼 수 없다.

축관은 마을의 안녕과 삼재 소멸, 전염병 방지를 기원하고 소지(燒紙)하여 액을 면하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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