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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선생 송덕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461
한자 今村先生頌德碑
영어음역 Imamura Seonsaeng Songdeok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Imamura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일본 코우지케 토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손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양식 송덕비
건립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1988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마무라 다다오

[정의]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인 교장 이마무라의 송덕을 기려 세운 비.

[건립경위]

일본인 이마무라 다다오[금촌충부]는 1925년 5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진주농업학교(후의 진주산업대학교)에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37년 6월 12일 진주농업학교 교정에서 경상남도지사와 하동군수 등 기관단체장과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마무라 교장의 송덕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연유는 그가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실천궁행의 교풍을 진작시켰으며, 진주농고의 발전에 여러모로 기여하였다는 것이었다.

[변천]

1945년 광복이 되자 학생들은 학교 안에 있는 일제 잔재 청산의 차원에서 이마무라의 송덕비도 함께 없애버렸다. 그가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 시에 내선동조(內鮮同祖)를 강조하고 농업학교 근로보국대장으로서 학생들을 강제노동에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송덕비는 철거된 지 43년 만에 장소를 바꾸어 다시 일본에 세워졌다. 1988년 진주농고의 옛 제자들이 기금을 모아서 1963년 사망한 이마무라의 생가가 있던 일본 고지케 도사시에 ‘은사 금촌충부 선생 송덕비’를 재건한 것이다. 비명은 옛 제자인 은초 정명수가, 비문은 파성 설창수가 썼다. 당시 일본의 『산케이신문』에는 “반세기의 시간을 넘어 일본과 한국이 맺은 사제의 사랑”이라고 보도하였으나, 국내 언론에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아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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