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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형조판서김준민신도비및신도비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494
한자 贈刑曹判書金俊民神道碑-神道碑閣
영어음역 Jeunghyeongjopanseo Gim Junmin Sindobi Mit Sindobigak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with House for General Kim Junmin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 629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유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시기/연도 1918년연표보기 - 증형조판서김준민신도비및신도비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증형조판서김준민신도비및신도비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증형조판서김준민신도비및신도비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신도비|비각
관련인물 김준민(金俊民)
비두너비 145㎝
비두두께 116㎝
비두높이 45㎝
비좌너비 112㎝[귀부]
비좌두께 151㎝[귀부]
비좌높이 36㎝[귀부]
너비 83㎝
비신두께 28㎝
높이 225㎝
비문찬자 곽종석(郭鐘錫)
비문각자 허찬|이면재(李勉宰)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 629
소유자 상산김씨 제학공파발산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조선 중기 무신 김준민(金俊民)[?~1593]의 신도비와 비각.

[개설]

김준민은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거제현령(巨濟縣令)의 직위에 있다가 관군이 패배하고 흩어지자 의병을 모아 무계현(茂溪縣)에서 왜군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부대를 격파했다. 1593년에는 김천일(金千鎰)의 휘하에서 2차 진주성전투에 참가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었고 병조판서에 추증, 충민사(忠愍祠)에 제향 되었다.

[건립경위]

신도비는 1918년 김준민의 애국충절을 기려 비각과 함께 세웠다. 1970년대 초 그의 후손들이 뜻을 모으고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신도비를 복원하였으며, 의령에 있는 묘지를 비각 옆으로 옮겨 그 내역을 기록한 비문을 비각 경내에 별도로 추가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 629번지에 있다.

[형태]

신도비는 귀부와 비신, 지붕돌[가첨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귀부와 비신, 이수로 되어 있는 일반 비석과는 형태가 다르며 보기 드문 대형이다.

귀부의 거북은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며 거북의 등은 둥글게만 깎여 있다. 크기는 머리 부분의 높이가 36㎝, 앞뒤(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51㎝, 좌우 폭이 112㎝이다. 비신은 화강암 청석(靑石)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 225㎝, 폭 83㎝, 두께 28㎝의 크기이다. 지붕돌은 팔작지붕형태로 다듬었는데, 높이 45㎝, 앞뒤 116㎝, 좌우 145㎝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거친 편이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의 좌우 협칸에는 벽 전체에 연꽃, 연실, 물고기, 학, 나비 등을 투각하였고 후면과 양측면의 상부에는 진주성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금석문]

신도비의 비문은 곽종석이 지었는데, 김준민의 행적과 충의정신을 표양하는 산문체 문장으로 되어 있다. 글씨는 허찬이 전액(篆額)을 썼으며, 비문은 이면재가 해서(楷書)로 썼다. 비각에는 ‘충의각(忠義閣)’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현황]

신도비각을 둘러싸고 담장을 쌓여 있으며, 주변을 다시 철제 난간으로 둘러 보호하고 있다. 신도비 및 비각은 2001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김준민 장군의 호국정신을 오래도록 기리는 장으로서의 정신사적 가치와 함께,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의 비와 비각의 변모양상을 살필 수 있는 연구사적 의의를 지닌 문화재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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