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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600
한자 獐項
영어음역 Norumok Pass
이칭/별칭 장항,노루미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집필자 김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개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에 있었던 지명.

[명칭유래]

이 곳을 노루목(또는 노루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산자락을 넘어가는 고개가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써서 한자어로 장항(獐項)이라고 했다. 노루목우수리 우수마을회관에 가까워 우수리 노루목이라고도 부르지만 용산리 노루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옛 지리지에 “용산 아래 노루목 위에는 큰 명지(좋은 땅)가 있어 3정승·8판서가 나올 자리”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노루목을 ‘노루미’라고도 부르는 것은 노루가 많이 사는 산이란 뜻이지 목이 잘린 노루 대가리가 꼬치처럼 볼품없이 되어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천]

노루목이 절단돼 노루미가 되어버린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일제는 조선시대 진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기도 했던 진주~산청간의 오솔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로 확장하기 위해 노루목을 절단했다. 일제가 노루목을 손대기 전만 해도 이곳은 야생 노루들이 뛰어 놀던 한적한 고개에 불과했다. 일설에 의하면, 이 노루들은 이곳에 묻힌 죽은 이의 영혼이 환생한 영물들이라고 했다.

사실상 이곳 노루목에는 고대 가야인의 고분들이 즐비해 있어 후세 사람들은 노루목의 고분을 우수리 방형고분군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노루목에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무덤이 많이 생겨나 이곳이 조상 대대로 명당 자리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김해김씨 문중의 무덤 자리로 조성되어 종중산이 되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무덤 자리로서 죽은 이의 영혼이 조용히 머물던 이 곳에 어느 날 일제의 굴착 공사가 시작되었다. 일제는 노루목의 고개가 완만하기 때문에 아예 고개길을 송두리째 파내고 신작로를 내기로 했다. 이와 같은 일제의 도로 공사를 지켜보던 우수리 주민들은 불길한 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곧이어 적중하고 말았다. 노루목을 파내던 공사장의 인부가 갑자기 굴착장비를 내던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깊숙이 파헤쳐진 노루목 한가운데에서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일제가 노루목의 신성함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목을 끊으니 결국 피를 보고야 말았다”고 두려워하며, “이젠 이 곳에서 나올 인물도 수명을 다했다”고 한탄했다. 노루목의 신작로 공사장에서 뻘건 피가 나왔다며 민심이 흉흉해지고 조선인 공사 인부들은 겁을 먹고 작업을 거부하는 조짐마저 보이자 일제는 진상 조사에 착수하여 노루목에서 나온 것은 피가 아니고 진한 황토물이었다고 주민들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일제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고, 노루목에서 나온 것은 황토물이 아니라 진짜 핏물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일제는 노루목 굴착 공사를 계속해 목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고 차량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의 신작로를 완성시켰다. 그 후 노루목에는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생 노루들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까지 고장이나 우리나라를 빛낸 인물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제의 신작로 건설 이후 노루목 도로는 계속 넓어져 광복 후 2차선으로 확장되었다가 1997년부터는 4차선으로 확장해 결국 노루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편 진주~산청간 국도 4차선 확장 공사 때 노루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산기슭에서 대량의 가야고분군이 발견되었으나 일제 때 도굴되었던 고분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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