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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365
한자 松亭先生文集
영어음역 Songjeong Seonsaeng Munjip
영어의미역 Collected Works of Song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자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정조(正祖)|채제공(蔡濟恭)
저자 하수일(河受一)
편자 하병태(河炳台)|하정중(河正中)
간행연도/일시 1788년(정조 12)연표보기
권수 2권
책수 2책
판종 목판본
가로 29.0㎝
세로 15.4㎝
장정법 선장(線裝)
지질 닥종이
어미 상하향이화문어미(上下向二花紋魚尾)
광곽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크기(가로) 22.2㎝
반곽크기(세로) 15.4㎝
행수 10행
한 행의 자수 22자
권수제 송정선생문집
판심제 송정선생문집
소장처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진주대로 501] 경상대학교 문천각

[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하수일(河受一)[1553~1612]의 문집.

[서지적 상황]

현재 초간본은 장서각(4-6197),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1022), 고려대학교 도서관 晚松文庫(D1-A1450),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중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88-8), 성균관대학교 도서관(D3B-617)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발간경위]

이광정(李光靖)이 지은 행장에 “공이 일찍이 저술을 수집하여 『송정세과(松亭歲課)』라고 명하였는데, 공이 죽은 지 2백여 년이 지났고 자손들이 화란을 겪었지만 유문(遺文)이 아직 집에 소장되어 있다. 6세손인 하달중(河達中)이 비로소 간행을 계획하여, 그 동생 하치중(河致中)을 보내어 나에게 교감을 부탁하였다…”라고 하였다.

채제공(蔡濟恭)의 서문에서도 “공의 6세손 하정중(河正中)이 집안에서 보관해오던 유문을 간행하려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고 하였다. 저자의 6대손인 하정중(河正中)하달중(河達中)이 소장되어 있던 『송정세과』를 바탕으로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여 이광정(李光靖)의 교정과 편차를 거친 뒤, 1788년(정조 12)에 채제공(蔡濟恭)의 서문을 받아 6권 3책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초간본에는 이현석(李玄錫)[1647~1703]의 서(序)도 실려 있어, 1700년경에 자손들에 의해 유문의 정리가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1785년 그의 6세손인 하달중(河達中) 등의 주선으로 판각(板刻) 간행되었다.

[구성]

권1에는 「제가례권후(題家禮卷後)」 등 시 135수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원화섭평암위경운(遠和葉平岩爲敬韻)」 등 시 171수와 「차김이신적남추강부(次金而信吊南秋江賦)」 등 부(賦) 8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답이여실논문(答李汝實論文)」 등 서(書) 12편과 「영감실록서(永感實錄序)」 등 서(序) 22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덕산서원세심정기(德山書院洗心亭記)」 등 기(記) 32편과 「병죽설(病竹說)」 등 설(說) 9편 및 「발파기설후(跋破譏說後)」, 「독소노천관중론(讀蘇老泉管仲論)」 등 각 1편이 실려 있다.

권5에는 「대각서원상량문(大覺書院上樑文)」 등 상량문(上樑文) 2편과 「옥산기우문(玉山祈雨文)」 등 기우문 3편 및 「제조대소헌문(祭趙大笑軒文)」 등 제문(祭文) 19편, 「대각사우영건통문(大覺祠宇營建通文)」 등 통문(通文) 2편, 「독서당팔입영시해의(讀書堂八詠詩解義)」 등 잡저(雜著) 2편, 「동지하전(冬至賀箋)」 등 전(箋) 2편, 「오성취규송(五星聚奎頌)」 등 송(頌) 4편이 실려 있다. 권6에는 「수우당명(守愚堂銘)」 등 명(銘) 4편과 「공조좌랑이공묘갈명(工曹佐郞李公墓碣銘)」 등 묘갈지명(墓碣誌銘) 6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부록(附錄)으로 하수일의 세계(世系)와 행장(行狀) 2편, 「한산이광정장(韓山李光靖狀)」 및 「하겸재찬(河謙齋撰)」, 그리고 「유사하겸재홍도찬(遺事河謙齋弘度撰)」, 「이만부찬(李萬敷撰)」, 「서원봉안문(書院奉安文)」, 이여빈(李汝檳)의 서(書)인 「서송정세과후(書松亭歲課後)」 등의 참고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채제공(蔡濟恭)이현석(李玄錫)이 쓴 2건의 서문(序文)과 서(書)가 들어 있다.

[내용]

하수일은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였다. 벼슬은 사마(司馬)를 거쳐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였다.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그의 가문은 당대의 반족(班族)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것은 별로 없고, 다만 “문장과 사장의 학습 수준이 이미 당시의 여러 무리들보다 탁월하였다(文章詞章之習, 已能卓然於流輩)”는 정도의 막연한 찬사 등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내용의 대부분은 선비의 일상생활 가운데 느낀 바를 기록해 놓은 글이다. 예를 들면, 난중(亂中)에 말벗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오직 매화 한 가지가 있어 무료함을 면할 수가 있었다든가, 또는 그의 전실 여서(前室 女壻: 전처가 낳은 딸과 혼인한 사위)가 20세에 요절한 것을 애도하며 만사(輓詞)를 지었다는 글 등이 많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8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1)「차금이신적남추강부(次金而信吊南秋江賦)」 등 부(賦) 8편이 실려 있다 ->「차김이신적남추강부(次金而信吊南秋江賦)」 등 부(賦) 8편이 실려 있다 2) 권5에는 「대각서원상량문(大覺書院上樑文)」 등 상량문(上梁文) 2편과 ->권5에는 「대각서원상량문(大覺書院上樑文)」 등 상량문(上樑文) 2편과 3) 다만 “문장사장지습, 이능탁능연어류배”(文章詞章之習, 已能卓然於流輩: 문장과 사장의 학습 수준이 이미 당시의 여러 무리들보다 탁월하였다.)는 정도의 막연한 찬사 등을 ->다만 “문장과 사장의 학습 수준이 이미 당시의 여러 무리들보다 탁월하였다(文章詞章之習, 已能卓然於流輩)”는 정도의 막연한 찬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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