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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117
한자 晋州牧
영어음역 Jinju-mo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고려 초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형성]

진주는 고려 초기 청주(菁州)라 하였다가 다시 강주(康州)로 환원하였고, 983년(성종 2) 2월 주제(州制)를 목(牧)으로 개혁하면서 진주는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변천]

성종 14년(995) 9월 처음으로 전국에 10도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어 10주 37현을 통할했다. 현종 9년(1018) 2월에는 앞서 두었던 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4도호(都護), 8목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진주는 전국 8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고, 호를 진양(晋陽)이라 하였으며, 지금의 단성과 하동을 속군으로 두었다. 1106년(예종 1) 종전의 영남도·영동도·산남도 등 3개 도를 통합하여 경상진주도(慶尙晋州道)라 하고, 1171년(명종 1)에는 경상진주도를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합주도(晋陜州道)로 나누었는데, 진주는 진합주도에 속하면서 감영 소재지가 되었다. 1186년 다시 통합하여 경상주도로 고쳤으며, 1204년(신종 7)에는 상진안동도(尙晋安東道), 1298년(충렬왕 24)에는 경상진안도(慶尙晋安道)라 하였다가 1314년(충숙왕 1) 5도가 설치되면서 경상도(慶尙道)로 된 후 지금까지 이 명칭이 내려오고 있다. 이때 경상도는 1경, 2목, 30군, 92현을 거느렸는데, 진주목의 관할 구역은 4군 26현이었다. 조선 건국 후 태종 13년(1413)에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를 두었다. 1416년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진주는 경상도에 속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7년여의 참혹한 전란 끝에 황폐화된 지역이 많아지자 농촌의 말단 조직인 이(里)의 통폐합이 이루어졌는데, 진주지역은 전란 전의 108개에서 전후 62개로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2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3개 도를 통합하여 경상진주도(慶尙晋眞州道)라 하고, ->3개 도를 통합하여 경상진주도(慶尙晋州道)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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