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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무진회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119
한자 晋州無盡會社
영어의미역 Jinju Mutual Credit Unio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금융업
설립연도/일시 1923년 3월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금융기관.

[개설]

무진(無盡)이란 일정한 계좌수와 급부 금액(給付金額)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부금을 납입한 부금자(賦金子)에게 1계좌마다 추첨·입찰 등의 방법에 의하여 일정 금액을 급부하는 제도였다.

1914년 말 당시 서울에는 137조(組)의 무진강이 있었으며 무진구수(無盡口數)는 1,738구였다고 한다. 또한 1921년 7월 말 무진회사는 77개소에 이르렀고 무진강수는 776강(講), 무진구수는 28,710구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진회사의 경우, 25개 무진회사가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역진에 한국인 1명이 참가하고 있던 무진회사로는 충청북도(청주), 복덕(福德)[서울], 함흥, 전주, 진주, 통영, 해주 등 7개 회사였다. 한국인 2명 이상이 중역진에 있었던 회사는 개성무진주식회사 뿐이었고 중역진이 한국인만으로 구성되어 있던 회사는 대구의 조양무진주식회사(朝陽無盡株式會社) 뿐이었다. 경상남도에서 무진회사는 진주, 사천, 산청, 하동, 함양, 거창, 남해, 합천 등 진주의 경제권인 8개 군의 비교적 광범한 지역을 영업 구역으로 삼았다.

일본인 무진회사가 난립하고, 방만한 경영을 하자, 조선총독부는 1922년 5월 11일 일본 무진업법(無盡業法)에 기초하여 무진업을 회사조직체로서만 경영할 수 있는 조선무진업령(朝鮮無盡業令)을 발포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무진업이 일본인의 독점적인 이식수단(利殖手段)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무진업이 금융업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액의 규정을 의식적으로 회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회사의 악덕 행위가 일본인에 대한 폐해로 나타나자, 조선총독부는 1931년 6월 9일 개정된 조선무진업령을 발포하였다. 조선무진업령으로 비로소 무진업의 자본규정이 이루어졌다.

[설립목적]

금융 제공에 대한 이식(利息) 징수를 목적으로 하였다.

[설립경위]

1921년 8월 조선무진령 공포에 의하여 전국에 무진회사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1923년 3월 진주지역에도 자본금 6만원의 진주무진회사가 창립되어 영업을 개시하였다.

[변천]

1936년에 부산무진회사를 중심으로 진주, 마산, 통영 등의 4개 사를 합병하여 자본금 100만원으로 증자하였고, 진주는 지사가 되어 영업을 하였다. 합병 후, 대홍수를 만나 피해가 막심하여 그 해 가을 영업소 신축에 들어가 익년 7월에 준공하였다. 삼천포, 거창, 하동에는 출장소를, 합천, 함양, 산청, 남해, 사천에는 주재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무진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신용력과 담보 능력이 미약한 서민이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받는 서민금융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61년 12월 7일 국민은행법(國民銀行法)이 공포되었다. 국민은행법에 의거하여 기존의 무진회사 중 일부를 흡수·병합하여 서민금융기관으로서 국민은행이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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