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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285
한자 處容歌舞
영어의미역 Song and Dance of Cheoy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무용과 민속극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수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향악정재|가면무|의식무
형성시기 신라시대
주요 등장인물 처용|헌강왕

[정의]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탈을 쓰고 추는 향악정재.

[개설]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로부터 기원된 것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쳐 궁중정재와 구나의(驅儺儀)의 뒤에 추는 향악정재이다.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의 나례에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서 다시 시작해 오늘날에 전한다. 1872년(고종 9) 진주목사를 역임한 정현석이 지은 『교방가요』에 처용가무가 소개되어 있다.

[구성]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청(靑)·황(黃)·적(赤)·백(白)·흑(黑)의 다섯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처용의 탈을 쓰고 오방으로 벌려 서서 여러 춤사위를 바꾸어가면서 추는 춤으로, 창사(唱詞)는 원래 「처용가」를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개찬된 「봉황음가」를 불렀다.

[의의와 평가]

기생이 많았던 진주에는 1868년 조선기생의 자존심으로 일컫던 기생들의 종합 가무제인 의암별제가 탄생되었다. 처용가무는 의암별제 때 행해진 진주기생의 여흥가무 중 하나로, 진주 교방문화가 크게 꽃 피우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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