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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20
한자 淸州韓氏
영어음역 Cheongju Hanssi
영어의미역 Cheongju Han Clan
이칭/별칭 면천한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학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중도|지수면 용봉리 동지
집성촌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정수
입향시기/연도 1500년 전후
성씨시조 한란(韓蘭)
입향시조 한승리(韓承利)

[정의]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연원]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이다. 한란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이 있으므로 개국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올랐다. 그는 청주 방정리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은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12세 한상경은 조선의 개국공신이고 14세 한계희는 좌찬성으로 서평군에 봉하여졌으며 15세 한사무는 한성판관을 지냈다. 진주의 청주한씨는 1명의 문과 급제자와 8명의 사마 입격자를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16세손 한승리가 연산군의 난정을 피하여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동산에 은거하였다. 이후 광해군 때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조참판이었던 한천기는 지수면 용봉리로 내려와 진주 지역으로 입향하게 되었다.

[세거지현황]

한승리의 후손들은 주로 이반성면 동산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고, 22세손 한범석의 후손은 진주의 평거에 살다가 26세손 한홍적에 의해 옥종의 병천으로 이거하였다.

[묘역]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의 묘역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현재 묘소는 본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의 묘비와 상석 등이 현존하고, 효종 때의 문인석과 용마석이 보존되어 고려 초기 묘역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풍수지리의 특성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6.08 생몰년대 오류 연원 소표제 내용 중 한란의 생몰년을 미상으로 수정 완료하였음
이용자 의견
신**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 답변
  • 디지털진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1.02
한** (연원)4행본문중 한란의 생년년대(853-916)는 잘못된 년대이다
그이유는 고려건국이 918년 고려태조의 견훤 정벌이 928년이다
916년에 사망한 한란이 918년의 고려 건국과 928년의 견훤 정벌에 관여 한것이 되여 전후 행적 이 맞지 앟는다 생년년대에 대하여는 확실한
정설이 없다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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