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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73
한자 忠臣
영어음역 chungsin
영어의미역 loyalist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백태남

[정의]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개설]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세운 일반 공신들과는 확실히 구분되고 있다. 특히 충신은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많이 나왔고, 이들의 희생으로 국가는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충효사상의 전승]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孝)와 함께 충(忠)을 중시하여 신라에서는 화랑도에게 “들어가서는 가정에서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한다”는 취지를 교육시켰다. 이러한 의식은 백제도 마찬가지여서 뒷날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충신 성충(成忠)과 흥수(興首)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자왕에게 간언을 올렸고, 장군 계백(階伯)은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또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살수대첩, 온달(溫達) 장군의 전사도 나라를 위한 충성심의 결과로 나온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고려 말 끝까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다 개성 선죽교(善竹橋)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鄭夢周)의 절개는 지금까지 생생히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비롯하여 김상헌(金尙憲)과 삼학사(三學士) 등의 충신이 나왔고, 한말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침입에 대한 충신들의 항거가 매우 장렬하였다. 특히 전통시대에는 위난을 당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나라에 충성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특색인데, 1592년의 임진왜란 때에는 전국적으로 11인의 충신을 선정하여 정문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진주의 빛나는 충절들]

진주목의 읍지인 『진양지』에는 1,045인의 진주 인물이 실려 있는데, 이 중 충의로 이름을 남긴 51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초 거란의 침입에 항거하다 순절한 하공진과 거란군 격파에 공을 세운 강민첨(姜民瞻)[?~1021]은 진주를 빛내는 충절의 대표적 역사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을 맞아 진주성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순절한 수많은 충신들이 진주의 애국정신과 겨레를 위한 충절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하공진(河拱辰) :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진주하씨이다. 일찍이 북방에서 여진 토벌을 지휘하다가 1010년(현종 1) 거란의 침입 때 남쪽으로 피란 중이던 왕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 교섭을 자청, 적진에 들어가 거란 성종을 만나 거란군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자신은 볼모로 거란에 끌려갔다. 이후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고 고문을 받으며 거란에 충성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절하며 항거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이 일은 1011년의 일로서 역시 거란에 항거하다 죽임을 당한 강조(康兆)와 더불어 고려인의 기백을 과시한 대표적 예에 속한다.

강민첨(姜民瞻) :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이며,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현종 9년(1018) 10만의 거란군이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도와 부원수로서 귀주전투에서 적을 격파하여 공을 세웠다.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강민첨 탄생유적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는데, 경내에는 강민첨의 호를 따서 은열사(殷烈祠)라 이름지은 사우가 있다.

변연수(卞延壽)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함께 왜선 30여척을 격파하고 수많은 왜적을 참획하여 군공을 세웠다. 이어서 당포해전(唐浦海戰)에도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아들 변립(卞岦)과 함께 전사하였다. 고종 때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향리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병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정기룡(鄭起龍)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진주정씨에서 분적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중시조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병마사 조경(趙儆)의 휘하에서 종군하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토왜대장(討倭大將)이 되어 공을 세우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승진하였다. 왜란이 끝난 뒤 1601년 다시 경상도방어사가 되어 왜군의 재침에 대비하였고, 1610년(광해군 2)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의 직을 맡다가 통영의 진중에서 별세하였다.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황진(黃進) :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전해인 1591년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서 일본이 반드시 우리나라를 침입해 올 것이라 경고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원·상주 등지에서 적을 크게 무찔러 공을 세우고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3년 6월 왜군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여 오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진주성을 사수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공을 기려 좌찬성에 추증하였으며, 진주 창렬사(彰烈祠)와 남원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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