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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처 광산김씨 효열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546
한자 朴準秀妻光山金氏孝烈碑
영어음역 Park Junsu Cheo Gwangsan Kimssi Hyoyeolbi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Lady Kim from Gwangsan, Park Junsu's Wife
이칭/별칭 박준수 처 광산김씨 정려(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노재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旌閭)
관련인물 광산김씨|박준수
비두너비 100㎝
비두두께 70㎝
비두높이 50㎝
비두재질 백색 화강암
비좌너비 103㎝
비좌두께 95㎝
비좌높이 11㎝
비좌재질 백색 화강암
너비 55㎝
비신두께 25㎝
높이 153㎝
비신재질 백색 대리석
비문찬자 허찬(許巑)
비문서자 공재의(孔在懿)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에 있는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광산김씨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박종래(朴宗來)가 주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효자리로 들어가는 효자교 부근 진주~합천간 지방도 옆에 남향으로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에 높이 153㎝, 폭 55㎝, 두께 3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효부광산김씨지려(孝婦光山金氏之閭)”로, 비문은 허찬(許巑)이 짓고, 공재의(孔在懿)가 썼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광산김씨 부인은 열여덟 살에 집현면 효자리의 참봉 박준수(朴準秀)에게 시집을 왔다. 평소 성품이 순하고 곧아서 시부모를 정성으로 섬겼으며, 남편도 예를 다해 모셨다. 그러던 중 팔순의 시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광산김씨는 몇 년 동안 밤낮으로 시어머니를 보살폈고 똥을 맛보며 병의 차도를 살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시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렇듯 지성으로 시어머니를 보살피자 시어머니가 말하기를, “효성스럽다, 우리 며느리. 병든 나를 몇 년 동안 편안하게 해준 것은 우리 효부의 정성 때문이다”라며 고마워했다. 시어머니가 천수를 다하고 죽자, 광산김씨는 통곡하고 가슴을 치다가 혼절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성으로 삼년상을 마치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김씨의 효성에 감복해 마지않았다. 세상이 혼란하여 정려를 받지 못하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오랫동안 한스럽게 여겼다.

[현황]

명칭은 정려로 되어 있으나 정려각은 없고 비만 있다. 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여 비문의 내용도 잘 알 수 있다. 머릿돌을 받치는 사각 돌기둥을 세워 비신도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선조들이 소중히 여겼던 효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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