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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봉 처 수원백씨 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550
한자 金容鳳妻水原白氏碑
영어음역 Kim Yongbong Cheo Suwon Baekssi Bi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Virtuous Lady Baek from Suwon, Kim Yongbong's Wife
이칭/별칭 효열부증정삼품통정대부동몽교관김해김용봉처숙부인수원백씨지려(孝烈婦贈正三品通政大夫童蒙敎官金海金容鳳妻淑夫人水原白氏之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재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열비
건립시기/연도 1918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수원백씨
높이 173㎝
비두너비 66㎝
비두두께 47㎝
비두높이 28㎝
비두재질 백색 화강암
너비 39㎝
비신두께 16㎝
높이 145㎝
비신재질 백색 대리석
비문서자 김대기(金大基)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소곡면 삼구부락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 삼구부락 입구에 위치한 수원백씨의 효열비(孝烈碑).

[개설]

김용봉의 처 수원백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 있다. 1918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효(孝)와 열(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건립경위]

수원백씨의 효행과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남편 김용봉은 동몽교관으로, 수원백씨는 숙부인으로 증직(贈職)되었다. 향리 사람들과 집안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18년에 세웠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소곡리 삼구부락 입구 도로 변에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5㎝, 폭 39㎝, 두께 16㎝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비문은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그 내용을 잘 알아 볼 수 있고, 남서향(南西向)으로 자리 잡았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효열부증정삼품통정대부동몽교관김해김용봉처숙부인수원백씨지려(孝烈婦贈正三品通政大夫童蒙敎官金海金容鳳妻淑夫人水原白氏之閭)’로, 수원백씨의 아들 김대기(金大基)가 글을 썼으나, 비문의 찬자(撰者)는 기록이 없다.

글의 내용은 대략 ‘어려서부터 품행방정하였던 수원백씨는 사인(士人) 김해 김용봉에게 시집을 왔으나, 나이 20이 되기도 전에 남편을 사별하였다. 이에 5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과 함께 묻히길 맹서하였으나, 시어머니 박씨가 “아들이 죽은 것도 참고 볼 수 없는데, 이제 며느리가 죽는 것을 또 봐야 한다면, 나 또한 죽을 것이다.”라고 만류하자 이 말을 듣고 죽기를 포기한 후 미망인의 예를 다하였다. 시어머니 박씨가 노환으로 누운 4년 동안 온갖 정성으로 보살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밤낮으로 끊임없이 곡하였다. 삼년상을 마치자 이웃 사람들이 감탄하여 효열로 천거하였으며, 융희(隆熙) 2년에 조정으로부터 효열로 인정받아 남편 김용봉은 정삼품 통정대부 동몽교관으로 부인은 숙부인으로 증직(贈職)되었다.

[현황]

1981년 도로 공사를 계기로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주위에 붉은 벽돌담을 쌓아 보호하고 있으며, 비석 앞에는 두 개의 붉은 벽돌 기둥위에 높이 30㎝, 길이 92㎝, 두께 21㎝의 효열문(孝烈門)을 새긴 화강암을 얹었다.

[의의와 평가]

수원백씨의 효행(孝行)과 열행(烈行)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비석은 정촌면 소곡리 삼구마을 입구 도로 옆에 서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효(孝)와 열(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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