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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31
한자 李光岳
영어음역 Yi Gwangak
이칭/별칭 진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아버지 이호약(李好約)
성별
생년 1557년연표보기
몰년 1608년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진지(鎭之)
시호 충장(忠壯)
추서 광평군(廣平君)
상훈 선무공신 3등
대표관직 곤양군수|전라도병마절도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의 아들이다.

[생애]

1557년(명종 12) 출생하여 1608년(선조 41) 51세로 별세할 때까지 무인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1584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1592년 곤양군수가 되었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영남 일대에 침입해오자 선봉에 서서 왜군에 대적하였다.

그 뒤 제1차 진주성전투가 벌어지자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적에 대항하였으며, 김시민이 전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총지휘관이 되어 대승을 거두고 적을 격퇴시켰다. 이후 100여 차례의 전투에서 항상 선봉에 서서 적의 예봉을 꺾어 아군의 사기를 북돋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598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명의 군사와 합세하여 왜군을 무찔렀다. 왜란 이후 1604년 경기도방어사를 거쳐 1607년에는 함경남도병마절도사에 있었는데, 병을 핑계로 근무를 태만히 하다가 한때 투옥되기도 했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진주성에 침입해오자 곤양군수로서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명령으로 좌익장(左翼將)이 되어 목사 김시민을 도와 분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594년에는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의 부장이 되어 동래까지 진출하였고, 1598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금산·함양 등지의 왜적을 명의 군대와 합세하여 격퇴하고 포로가 된 본국인 100여명과 우마 60여필을 탈환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공신 3등으로 광평군(廣平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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