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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37
한자 張潤
영어음역 Jang Yun
이칭/별칭 명보(明甫),충의(忠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편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1552년연표보기
몰년 1593년연표보기
본관 목천(木川)
명보(明甫)
시호 충의(忠毅)
추증 병조참판|좌의병부장(左義兵副將)
제향 정충사(旌忠祠)|창렬사(彰烈祠)
대표관직 사천현감|좌찬성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생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선전관 장응익(張應翼)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키는 팔 척이며, 특히 힘이 뛰어났다. 평소 유학에 뜻을 두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였다.

여러 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활쏘기와 말 타기에 전념,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을 제수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간호하다가 1588년에 다시 선전관에 임명되고 훈련원정을 거쳐 사천현감(泗川縣監)에 제수되었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 때 전라좌의병부장(全羅左義兵副將)이 되어 장수현에 주둔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성산(星山)·개령(開寧)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1594년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충청병사 황진(黃進),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진주성 방어전에 참전하였다. 전투 중 황진이 전사하자 그의 뒤를 이어 전투를 지휘, 8주야의 공방전 끝에 진주성이 함락되며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철종 때는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순천(順天)의 정충사(旌忠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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