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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57
한자 李尙逸
영어음역 Yi Sangil
이칭/별칭 여휴(汝休),용암(龍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편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이민선(李敏善)
어머니 김봉(金崶)의 딸
성별
생년 1600년연표보기
몰년 1674년연표보기
본관 벽진(碧珍)
여휴(汝休)
용암(龍巖)
대표관직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진위겸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진주목사(晋州牧使)|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안동부사(安東府使)|황해도감찰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석명(李碩明)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이며,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생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8년(광해군 10)에 아버지를 따라 경상도 선산으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박사를 거쳐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1646년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가 되었는데 이때 청나라의 침입을 맞아 감사를 대신해 산성을 지키고,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해온 주민들을 보호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송준길(宋浚吉)·김자점(金自點)을 논핵했고, 1650년 진위겸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0년부터 1654년까지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하면서 상평창을 창건하였다. 이후 중앙으로 소환되어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 전임되었다.

1654년(효종 5) 소현세자의 빈 강씨(姜氏)의 신원(伸寃)을 주장하다가 사형된 김홍욱(金弘郁)과 친교가 있었다 하여 삭탈관직되어 성주에 은거하였다. 1655년 안동부사(安東府使)로 복직된 후 참의·승지·판결사(判決事) 등을 지내고 1664년(현종 5)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66년 황해도감찰사가 되어 그 지방의 학교 시설을 적절히 폐치(廢置), 정리해 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이 지방의 민폐에 관한 옛 사실이 현종의 노여움을 사 체포되었으나, 당시 상신(相臣)인 이경석(李景奭)이 왕에게 간청해 용서받고 참의·승지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모두 사양하고 충청도 청풍부(淸風府)에 은거하며 주민을 위한 구휼사업·수리개발로 수도전(水稻田)을 개척해 농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1673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면직을 청하고 시폐(時弊)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저술]

『삼인사적(三人事蹟)』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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