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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854
한자 李禎
영어음역 Yi Jeong
이칭/별칭 강이(剛而),구암(龜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이담(李湛)
성별
생년 1512년연표보기
몰년 1571년연표보기
본관 사천(泗川)
강이(剛而)
구암(龜巖)
제향 구계서원(龜溪書院)[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리 118번지]
대표관직 병조참의|대사간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이담(李湛)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536년(중종31)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보임되었다. 다음해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친 뒤 연로한 부모 봉양을 위해 경상도 선산부사로 나갔다가 1552년(명종7) 사성, 이듬해 청주목사를 지냈다. 이때 선정을 베풀고 효행이 뛰어나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었다. 1555년 왜구가 호남성에 침입하자 이를 구원하러 갈 때는 군기가 엄정하여 그 위엄에 눌려 왜구들이 도망하였다. 1559년 우부승지·형조참의·좌부승지 등을 거쳐 이듬해 병조참의·대사간·호조참의·예조참의를 지내고, 경주부윤으로 나가 옛 신라의 열왕묘(列王墓)를 보수하고, 서악정사(西嶽精舍)를 세워서 후진 교육에 힘썼다. 1563년 중앙의 요직에 잠시 있은 뒤 다시 전라도 순천부사로 나가 갑자사화 때 사사된 김굉필(金宏弼)[1454~1504]을 위해 경현당을 건립, 그를 제사하게 하였다. 1568년(선조 1) 홍문관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고향에 구암정사(龜巖精舍)를 지어 동쪽에는 거경재, 서쪽에는 명의재를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학문과 사상]

어릴 때에는 송인수에게 배우고 성장한 뒤에는 이황과 교유하였다. 성리학에 밝았다.

[저서]

『구암문집』『성리유편』『경현록』『논상례』『한훤보록』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리 118번지에 있는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었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심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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