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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274
한자 崔元敏
영어음역 Choe Wonmin
이칭/별칭 사겸(士謙),죽계(竹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판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아버지 최경천(崔景泉)
어머니 전주전씨(全州全氏)
최원철(崔元哲)|최원량(崔元亮)
아우 최원선(崔元善)
아내 진주강씨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
성별
생년 1555년연표보기
몰년 1616년연표보기
본관 삭녕(朔寧)
사겸(士兼)
죽계(竹溪)
대표관직 성균관 진사(成均館 進士)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사겸(士謙), 호는 죽계(竹溪).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대사간을 지내고 처음으로 진주에 자리잡은 최복린(崔卜麟)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으로 옥포만호를 지낸 대재(大哉) 최경천(崔景泉)이다.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생애]

1555년(명종 10) 진주 진성면 대사리에서 태어나 1573(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종형 최언량(崔彦亮)의 창의에 동조하며 싸우다가 종형의 순절을 목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곽재우(郭再祐) 장군 진영에서 동생인 최원선(崔元善)과 함께 화왕산 방어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후 진성의 이천리로 이사하여 후학을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내다 1616년(광해군 8) 별세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에 부인 진주강씨 묘와 함께 쌍봉으로 있다.

[상훈과 추모]

최원민의 유적비가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이천리의 철도변에 있는데, 김황(金榥)이 비문을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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