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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연계재 고문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289
한자 晋州蓮桂齋古文獻
영어의미역 Documents Collected in Yeongyejae Shrine, Jin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222-6[향교로103번길 7]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3월 31일연표보기 - 진주 연계재 고문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주 연계재 고문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연계안|향안
편찬연도/일시 조선시대
소장처 진주연계재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222-6[향교로103번길 7]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향안과 연계안.

[개설]

연계재에는 향안 7책과 연계안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사족들은 향촌사회에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유향소(留鄕所)와 향회(鄕會)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수령의 자문에 응하거나 견제하고 향리들을 통제했다. 향안은 이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인물들의 명단이다. 그리고 연계안이란 소과인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뿐만 아니라 대과인 문과에 합격한 인물까지도 소록한 것을 지칭한다.

조선 초기부터 일부 고을에서는 유향소와는 별도로 사마시에 합격한 자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을 내에 사마소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연대감을 과시하고 또 효율적인 학문 연마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런 사마소는 후기로 오면서 대부분 고을에 세워진다. 그런데 나중에는 연계안이 만들어지면서 이 기구도 연계재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또 회원도 사마시 합격자뿐만 아니라 문과 합격자도 포함되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내용]

먼저 향안(鄕案) 7책 및 천주안(薦主案) 1책은 다음과 같다.

향안 제1책은 정사안(丁巳案, 1617), 기묘안(己卯案, 1639), 무자안(戊子案, 1648), 무술안(戊戌案, 1658), 기미안(己未案, 1679)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향안에는 한 시기의 것만 수록되어 있지 않고 여러 시기에 조성된 것이 같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도중에 여러 번 향안이 훼손되면서 다시 작성했다는 내용의 중수기가 실려 있고 숭정기묘년(崇禎己卯年)(1639) 수안시절목(修案時節目)도 실려 있다. 이 절목에는 향규(鄕規) 10조목의 내용이 있는데 1634년 갑술향안(甲戌鄕案) 중수 때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향안 제2책은 경오안(庚午案, 1690)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원과 천주의 명단이 실려 있다. 임진년(1712)에 다시 중수하였다.

향안 제3책은 임진안(壬辰案, 1712)이다. 향원과 천주의 명단이 실려 있고, 말미에는 생원 하세응(河世應)과 하응보(河應普)의 발문(跋文) 2편이 실려 있다.

향안 제4책은 병진안(丙辰案, 1736)이다. 원래의 병진안이 훼손된 이후 신묘년(1771)년에 다시 작성된 향안이다. 원래 41명의 명단이 있었으나 정일신(鄭一臣)만 남고 모두 도할(屠割)되어 버렸다.

향안 제5책은 병진안(丙辰案)이다. 향안의 훼손으로 계유년(1753)과 신묘년(1771)에 다시 작성했다가 계속 훼손된 이후 갑오년(1774)에 대차 중수한 것이다.

향안 제6책은 갑오안(甲午案, 1774)이다. 표지에는 ‘봉성교향안(奉聖敎鄕案)’이라 되어 있지만 내제로는 ‘봉성교통록향안(奉聖敎通錄鄕案)’으로 적혀 있다. 갑오년(1774) 12월 24일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1774년 병진안이 만들어진 당시까지만 해도 진주지역 유림들 사이에서 갈등이 첨예화하자 이것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왕의 교서까지 내려진 상황에서 향안이 새로이 만들어진 것 같다.

조선 후기에 와서 같은 양반층이면서도 서자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여러 차별을 받던 서얼층들이 집단적으로 운동을 전개해 중앙 조정에서의 관료진출에서도 서얼허통(庶孼許通)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방에서 향교, 서원이나 향안에 입록되는 것은 재지 사족층의 반발로 아직도 엄격히 제한되고 있었다. 이러한 제한을 없애기 위한 운동이 영조연간에 전개되는데 이런 운동을 통해서 향안에도 입록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된다.

향안 제7책은 표지에는 향안이라 되어 있고 ‘태종대왕교서(太宗大王敎書)’ 라는 표시가 있다. 태종의 총애를 받던 영의정 하륜(河崙)만 기재되어 있고 그에게 내려진 태종의 교서 및 관련 글이 있다.『진양지』에 의하면 하륜태종으로부터 받은 토지와 노비를 진주 향사당(鄕射堂)에 소속시켰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향안은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천주안(薦主案)은 신묘년에 재작성된 병진안에 수록된 인물들을 추천한 인사들의 명단으로서 이는 병진안 말미에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다시 천주안을 별도로 작성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천주안의 명단도 모두 삭제되어 있다.

또한 연계안(蓮桂案) 및 연계재(蓮桂齋) 재임안(齋任案)이 소장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사마안(司馬案)은 1738년에 만들어졌다. 허복(許輻)에 의해 쓰여진 서문에 의하면 진주에는 그동안 사마소가 없다가 1736년 정숙(鄭塾)에 의해 건립되었고 이 건물이 지어진 후 다시 사마안을 만들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것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만 11명 수록되어 있다.

청금록(靑衿錄)은 문송규의 서문에 의하면 사마안에는 사마시에 합격한 인물만 수록되어 문과에 합격한 사람들은 상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료를 동원하여 만력(萬曆) 년간 이후 문과에 합격한 인물들도 보완해서 같이 수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력 이후로 한정한 것은 그 이전의 인물을 정확하게 상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명안은 초기의 것이기 때문에 문과 합격자와 사마시 합격자의 명단이 뒤섞여 연대순으로 수록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연방안(蓮榜案)은 원래 1841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뒷표지에 정축(丁丑)년 7월 20일 비상한 변이 생겨 개안수정한 후에 궤(櫃)에 보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77년 다시 작성한 것 같다.

연방안(사마시 합격자의 명안)과 계적안(문과 합격자 명안) 2개의 책자를 따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연방안은 상안과 하안으로 구분하여 만력 이후의 것은 하안, 만력 이전의 것은 상안에 싣고 있다.

계적안(桂籍案)은 연방안과 같이 1841년에 만들어졌다가 1877년에 다시 작성되었다. 계적안은 문과 합격자의 명단으로 연방안과는 달리 상안, 하안의 구별이 없이 당시까지 문과에 합격한 인물들을 모두 기재하였다. 그러다가 1877년 재작성하면서 보유편과 하안 부분이 새로 첨록되는 양상을 보인다.

계적안(桂籍案)은 정축년(1877)에 새로 만들어진 계적안이다. 정축년에 개수된 신축안의 보유편과 하안에 일부 인사들이 더 추가 수록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연안(蓮案) 하(下)는 임진년(1892)에 만들어진 연방안으로서 이미 만들어진 연방안에 실린 인물 이외에 추가된 인물들을 계속 수록해 가고 있다.

계적안(桂籍案) 하(下)는 임진년(1892)에 만들어진 계적안으로서 이미 만들어진 계적안에 실린 인물 이외에 추가된 인물들을 계속 수록해 가고 있다. 수록된 인물 수는 3명 밖에 되지 않는다.

계방안(桂榜案)은 경술년(1910) 당시까지 만들어진 계적안의 인물들을 총망라해서 다시 정리해서 수록한 계방안이다.

연방안(蓮榜案)은 경술년(1910) 이전까지 만들어진 연방안의 인물들을 총망라해서 다시 정리해서 수록한 연방안이다. 여기에는 이전의 연방안에 수록된 서문과 발문들이 함께 소록되어 있다.

연계재임안(蓮桂齋任案)은 연계재의 운영을 주관한 재임들의 명단을 수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연계재의 향안은 일부 향안이 상당부분 도할된 채로 보관되어 있고 또 일부 향안에는 당시 향안이 훼손된 상황을 알려주는 글이 담겨 있어 당시 향안입록을 둘러싸고 각 가문과 계층간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모습들을 알려주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연계재의 향안은 처음 만들어진 사마안을 비롯해 각 시기마다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것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와 같이 각 시기의 것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드물다. 이것도 향안과 마찬가지로 당시 조선시대 진주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유력 성씨의 상황과 그들 간의 세력관계의 변천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005년 3월 3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22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1) 하세응(河世應)과 하응보(河應晉)의 발문(跋文) 2편이 실려 있다. ->하세응(河世應)과 하응보(河應普)의 발문(跋文) 2편이 실려 있다. 2) 만력년간 이후 문과에 합격한 인물들도 ->만력(萬曆) 년간 이후 문과에 합격한 인물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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