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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429
한자 李相根
영어음역 Yi Sanggeun
이칭/별칭 한국의 차이코프스키,부산·영남지역 음악의 대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류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작곡가[클래식]|음악가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시
성별
생년 1922년연표보기
몰년 2000년연표보기
본관 달성(達成)
대표경력 부산대학교 교수 및 예술대학장
상훈 부산시 문화상[1959년]|녹조근정훈장[1960년]|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1975년]|제14회 눌원문화상[1977년]|국민훈장 모란장[1987년]|제33회 대한민국 예술원상[1988년]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음악가.

[개설]

이상근(李相根)[1922~2000]은 1922년 1월 10일에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 176번지에서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한 아버지 이봉길과 어머니 탁방순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광복 이후에도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곡활동을 겸하였고, 한국의 현대음악을 주도하였다. 부인은 이창순이며, 이순우(李洵雨), 이진우(李進雨), 이은애(李恩愛)를 자녀로 두었다. 2000년 11월 23일에 사망하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실로암 공원묘지에 묻혔다.

이상근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가로 알려져 있으며, 음악 작곡 및 교육, 음악평론 등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였고, ‘부산·영남 지역 음악의 대부’ 혹은 ‘한국의 차이코프스키’로도 불린다.

[학력]

진주초등학교, 진주중학교,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43년에 일본의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의 조지피바디대학원과 버크셔뮤직작곡센터에서 수학하였다.

[경력]

부산대학교사범대학 교수 및 부산예술대학장, 음악교육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학창시절부터 이미 작곡활동을 시작하여, 18세 때 「해곡(海曲)」, 「내 사랑은」 등 오늘날에도 애창되는 가곡을 썼다. 광복 후인 1946년에는 마산여자중학교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하였다.

1950년대 말에는 관현악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발표회를 열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1982년에는 부산대학교의 교수와 강사, 학생들로 구성된 실내합창단 ‘프로 뮤지카(Pro Musica)’를 창설하여 실내악 운동의 진흥에 기여하였다.

[저술]

『우리가곡 시론 Ⅰ·Ⅱ』, 『우연성(불확정성) 기보법에 의한 시론』, 『현대음악의 사조』 등의 저서를 비롯하여, 중학교 음악교과서 및 교사용 지도서를 저술하였다.

[작품]

이상근은 교향곡과 관현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합창곡, 오페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대체로 ‘한국적 화음’과 ‘선율법의 독창성’을 특징으로 한다.

주요 교향곡으로는 「교향곡1번(서완조)」(1955년), 「교향곡6번(한국의 춤)」(1995년) 등이 있으며, 관현악곡으로는 「축전서곡 55432」(1976년), 「무악 81」(1981년) 등이 있다.

피아노곡으로는 「한국의 꽃」(1992년)과 「한국의 춤」(1994년)을 비롯하여,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1985년)」, 국악관현악곡인 「조우(遭遇) 시리즈 11곡」 등 다수의 가곡과 합창곡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부산시문화상(1959년), 녹조근정훈장(1960년), 대한민국작곡상(1975년), 눌원문화상(1977년), 국민훈장 모란장(198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1988)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도 청마 유치환의 시집인 「보병과 더불어」를 소재로 하여 관현악 반주에 의한 대규모 합창곡 「보병과 더불어(4악장)」를 작곡하였는데, 전쟁 중 분실하였다가 2006년 2월에 고문서 수집가에 의해 발견되어 54년 만에 초연되었다.「보병과 더불어」는 2020년 8월 12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로 지정되었다.

2006년에는 이상근의 음악사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는 반도병원에서 봉래초등학교에 이르는 1㎞의 거리를 ‘상근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의와 평가]

젊은 시절부터 독창적인 현대음악의 분야를 개척하였고, 실내악 운동의 산파역할을 하였으니 활발한 창작 활동과 서양음악기법의 도입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음악의 세계화를 주도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6 내용수정 "「보병과 더불어」는 2020년 8월 12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추가
2013.06.27 [학력] 수정 '중안초등학교'를 '진주초등학교'로 수정
이용자 의견
칸**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친필 악보가 2020.08.12.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반영해주세요.
https://newsis.com/view/?id=NISX20200817_0001131712&cID=10812&pID=10800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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