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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문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476
한자 晋州城門圖
영어음역 Jinjuseongmundo
영어의미역 Map of Jinju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의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도
제작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장처 동아대학교 박물관|서울대학교 규장각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진주성의 배치도.

[개설]

현존하는 「진주성도」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이며, 나머지는 『여지도서』에 실린 「경상도우병영지지도(慶尙道右兵營之地圖)」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에도 「진주성도」가 있다는 기록을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주대아고등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던 「진주성도」는 행방을 알 수 없다.

[형태]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는 지본 담채의 10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외성에는 대인문, 지제문, 예화문과 진남루, 동장대, 서장대가 나타나 있고, 이어서 내수문과 외수문, 홍교문 그리고 내성에는 공북문, 촉석문 등의 문루가 그려져 있다. 이들 중에서 외성의 예화문과 내성의 공북문은 문루가 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인문과 지제문, 예화문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성내에는 많은 관청 건물과 민가가 들어서 있는데 내성에는 공북문을 지나면 서쪽으로 진무청과 중영, 그리고 원문과 운주헌 등의 관청건물과 산성사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북창과 별창, 그리고 촉석루가 보인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는데 지제문과 예화문을 연결하는 남북로와 대인문과 지제문을 연결하는 동서로가 나 있고 외수문에서 북으로 연결되는 길도 표시되어 있다. 성의 남쪽으로는 의암이 위치한 남강이 흐르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해자를 파서 물을 채워 남강으로 연결시켰고 북쪽의 해자는 지제문 앞에서 다리를 통하여 건너게 되어 있다. 해자의 북쪽에 본부의 보장헌과 비봉관, 진영의 심신당, 무덕루가 그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작청, 장교청, 향청, 주옥 등이 나타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를 살펴보면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였고, 외성에는 옹성을 설치한 구북문, 신북문, 남문 등과 진남루, 동장대, 서문, 내수문, 외수문, 암문, 의암 등이 보이며 내성에는 공북문과 동문 등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내성의 안쪽에는 공북문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중영과 진무청이 있고 원문을 지나면 운주헌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서문 가까이에는 충열사와 호국사가 표시되어 있다. 공북문의 동쪽에는 북창과 별창, 진창 그리고 촉석루와 삼충비가 표시되어 있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역시 민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신북문과 남문을 연결하는 남북로와 구북문과 신북문을 연결하는 동서로를 중심으로 내성의 동문과 남문을 연결하는 길도 뚜렷하다. 그리고 성의 북쪽 즉 진남루에서 동장대까지 해자를 파고 신북문 앞에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한 것은 동아대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와 동일하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는 우선 성의 크기나 구조, 문루의 위치 등은 별 다른 점이 보이지 않지만 문의 명칭과 건물의 배치나 규모에 있어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루의 명칭에도 외성의 동장대서장대, 진남루는 동일하지만 대인문은 구북문, 지제문은 신북문, 예화문은 남문, 의정문은 서문으로 나타나 있고, 내문의 공북문은 동일하지만 촉석문은 동문으로 표기되어 있어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에는 하륜의 성문기에 보이는 문의 명칭이 대부분 그대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쪽에 위치한 산성사는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에는 호국사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다.

『여지도서』에 실린 경상도우병영지지도에는 우선 외성에 옹성이 설치된 구북문, 신북문, 남문과 진남루, 동장대, 서장대, 그리고 외수문, 내수문, 암문이 나타나 있고, 내성에는 내북문과 촉석문이 표시되어 있다. 공해로는 내성에 촉석루, 중영, 군기, 공진당, 관덕당, 내성사, 창열사, 충민사 등이 나타나 있고 외성에는 9개의 포루가, 내성에는 3개의 포루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못만을 나타내고 다른 「진주성도」에 보이는 민가는 그리지 않았다.

[특징]

세 작품에 그려진 진주성 문루와 건물의 배치 상태를 고려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하여 보면,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보다 먼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울대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에 표기된 문루의 명칭이 신북문, 구북문, 남문, 서문, 그리고 촉석루 앞으로 난 문루를 동문이라고 하였는데 반해, 동아대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에 표기된 문루의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의 하륜의 성문기에 보이는 명칭(置門三 西曰義正 北曰智濟 南曰禮化 皆樓其上焉)을 그대로 고수하여 지제문, 예화문, 의정문으로 하고 동문도 촉석문이라 하고 있다는 것과 산성사만 있고 호국사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병사의 집무청이 운주헌으로 나타나 있지만, 『여지도서』에는 ‘공해 관덕당병사좌기청 공진당병사별당(公廨 觀德堂兵使坐起聽 拱辰堂兵使別堂)’이라 하여 관덕당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 등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가 임진왜란 후 증축된 진주성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보여주는 자료가 되는 셈이 되고 그 제작시기는 진주성의 증축이 일단 완료되는 17세기 중반에서 17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진주성도」는 진주성 정비복원사업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지도서』의 그림에는 내성과 외성이 잘 나타나 있지만 외성에는 옹성이 설치된 삼문(구북문, 신북문, 남문)과 서문, 진남루, 동장대, 서장대, 내수문, 외수문, 그리고 촉석루 밑에 암문, 의암 등이 그려져 있고 내성에는 내북문과 촉석문이 그려져 있다. 한편 성의 북쪽에서 동쪽을 지나 남쪽까지 해자를 파서 남강에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성문의 배치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와 거의 일치하여 이 두 지도의 제작시기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진주성에 관한 자세한 배치도는 진주성의 기록과 함께 임진왜란 후에 증축된 진주성의 실상파악에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진주성 복원에도 크게 참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17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하륜의 성문기에 보이는 명칭(置門三西曰義正北曰智濟南曰禮化皆樓其上焉)을 그대로 고수하여 ->하륜의 성문기에 보이는 명칭(置門三 西曰義正 北曰智濟 南曰禮化 皆樓其上焉)을 그대로 고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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