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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지 제3권/임관/목사(牧使)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10003

○ 손소(孫昭), 이우(李堣), 한사개(韓士介), 신한(申漢), 김광진(金光軫), 서위(徐偉), 민전(閔詮), 김홍(金泓), 이희백(李希白), 노정(盧禎), 장문보(張文輔), 박승임(朴承任), 최응룡(崔應龍), 이억상(李億祥), 양응정(梁應鼎), 구변(具忭), 고경진(高景軫), 이제민(李齊閔) 이제신(李濟臣), 이현배(李玄培), 이선(李選), 임윤신(任允臣), 김제갑(金悌甲), 이준(李準), 신점(申點), 이유인(李裕仁), 최립(崔岦)

○ 이경(李璥) : 임진년 4월에 왜란(倭亂)을 당하여 지리산으로 피해 들어갔다가 소남(召南)에서 병들어 죽었다.

김시민(金時敏) : 임진년 10월에 적을 물리치고 성을 온전히 했다. 판관(判官)에서 목사(牧使)로 올랐으나 적의 탄환에 맞아 죽었다.

서예원(徐禮元) :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적에게 성이 함락되어 판관(判官) 성수경(成守慶)과 함께 죽었다.

○ 박종남(朴宗男) : 성이 함락된 뒤에 관사(官舍)가 형상조차 없어지자 가귀곡(佳貴谷)에서 임시로 붙어 지냈다.

○ 이기빈(李箕賓), 장계(張稧) 곽재우(郭再祐), 성윤문(成允文), 성대업(成大業)

○ 나정언(羅廷彦) : 정유년(선조 30년, 1597)의 난에 군사를 이끌고 적을 물리칠 때에 들을 비우고 정개산성(鼎蓋山城)으로 들어갔다가 적이 성 아래에 이르자 진(陣)을 버리고 달아났다.

○ 이현(李玹) : 만력(萬曆)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임시 군수(郡守)로 북면(北面) 단지동(丹池洞)에 와서 우거(寓居)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목사가 되고 적이 경내에 충만하자 성주(星州)로 가서 임시로 거처하면서 적을 토벌한 다음 기해년(선조 32년, 1599)에 본주(本州)로 돌아왔다.

○ 윤열(尹悅), 김명윤(金明胤), 원사립(元士立), 구사직(具思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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