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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마을-문화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T04007
한자 大谷面 丹牧마을-文化遺蹟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목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문화유적]

(1)고문서류

단목마을에는 동산문화재로서 진양하씨 가문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중요한 고문서들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 단목리와 금곡면 운문리에 대대로 살고 있는 진양하씨 소장의 고문서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고문서집성』에 수록되었다. 2000년 대곡면 단목리 창주 후손가 소장 고문서를 『고문서집성』47~48권으로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금곡면 운문리 진양하씨 소장 고문서를 역시 『고문서집성』57권으로 발간했고, 이어서 대곡면 단목리 진양하씨 단지종택 소장 고문서를 『고문서집성』 60권으로 발간했다. 이 고문서들은 대개 400년 이상의 세월을 지녀온 것으로, 조선 후기 진주지역 사족 동향은 물론, 정치·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받고 있다.

창주 가문은 대곡면 단목리에 세거한 전형적인 사족으로서, 17세기 중엽부터는 남명학파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주로 호서지방의 노론 계열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진주 노론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던 가문이다. 소장 고문서는 5000여점에 달한다. 특히 1622년 창주 하증이 아우 하성의 셋째아들 하달구를 양자로 들일 때 작성된 「예조입안」은 가장 오래된 고문서로서 귀중한 학술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단지공 소장 고문서는 16세기 이후 진주지역 인물들의 서한이 많으며, 특히 유림들 사이의 중요 사건에 대한 논의에 관한 것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것들이다.

또한 경상남도는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 관련 문헌 31점과 고문서 83점을 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고, 단목리 남산고택 소장 『창주집』책판 63매 및 『관포시집』1책 등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고시했다.

(2)비지정문화재

비지정문화재이기는 해도 진양하씨들의 각종 재사(齋舍)들이 남아 있고, 특히 진양하씨의 재실인 경모재(敬慕齋)에는 정조의 어필과 어필을 보관한 가마가 보관되어 있으며,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내고,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함께 활동한 죽헌공 하성(河惺)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아깝게도 도난당하여 지금을 볼 수가 없다. 이외 효자비·하마비·항일의병비 등이 마을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① 세덕사묘정비(世德祠廟庭碑) : 세덕사 내에 건립한 비로, 진양하씨의 시조공인 하공진(河拱辰)의 일대기 중 고려 현종조 거란 침입 때의 활약상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공진은 고려 현종 때의 문하시랑으로, 1011년(현종 2년) 거란족의 침입 때 왕명을 받아 거란군의 철군을 설득하러 갔다가 거란의 인질로 잡혔고, 결국 거란족에게 그해 12월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1052년(문종 6년), 문종하공진에게 당시의 공을 기려 상서공부시랑동평장사(尙書工部侍郞同平章事)를 추증하고, 그의 영정을 기린각(麒麟閣)에 걸었다고 한다.

1976년에 후손 하경완(河京完)이 세덕사를 건립하고 묘정비를 세웠으며,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선생이 「세덕사기(世德祠記)」를 지었다. 세덕사 안에는 현재 단목마을에 거주하는 진양하씨들의 직계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3개의 사당이 있는데, 그 명칭은 각각 계원사(啓源祠)·지미사(趾美祠)·소승사(昭繩祠)이다.

② 계원사(啓源祠) : 하공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③ 지미사(趾美祠) : 하공진의 8세손인 하식(河湜)을 제1위로, 그 아들 하거원(河 巨源)을 제2위로, 손자 하을숙(河乙淑)을 제3위로 하여 그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 세 분은 현재 단목마을에 거주하는 진양하씨의 직계조상이 된다.

④ 소승사(昭繩祠) : 지미사에 신위를 모신 하을숙의 아들 하렴(河濂)을 제1위로, 손자 하순경(河淳敬)을 제2위로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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